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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소용돌이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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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소용돌이의 정치

입력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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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국정수행 지지 24%'내일신문 7월 28일자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의 여론조사는 통상적인 4점 척도 조사와 달리 '그저 그렇다'라는 중간 항목을 넣은 5점 척도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간 나온 다른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수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된다.

'그저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51%나 되는데, '지지'가 24%라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걸까. '국정수행 잘못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2.8%인데, 만약 이걸 제목으로 내걸면 어떻게 될까? '노대통령 국정수행 비판 50%대에서 20%대로 줄어'라는 기사 제목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보도하는 것이 온당치 못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노대통령 국정수행 지지 24%'라는 기사 제목도 온당치 못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런 것은 아는 바 없다는 듯 내일신문의 머릿기사 제목을 근거로 사설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임하였다. 조선일보는 이후 기사를 통해서도 비교해선 안될 이전의 지지율과 비교하는 그래프까지 동원해 '24% 지지'를 계속 부각시켰다.

이건 언론 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지지도가 취임 5개월여 만에 20%대로 추락한 사례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드문 일"이라며 '국정의 위기'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신문이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여 위기를 부추기는 일은 흔한 일인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의 '위기 조장'은 악의(惡意)와 더불어 모든 것을 중심에 환원시켜 판단하려는 습속 때문일 수도 있다. 35년 전 어느 미국 정치학자가 지적한 '소용돌이의 정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정치평론의 대부분이 '제왕적 대통령'을 상정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 담론은 주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고언, 주문, 충고, 제언, 호소 등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나 세력끼리의 상호 논쟁은 거의 없다. 대통령이 모든 걸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1극 구조 또는 허브(수레바퀴형) 구조가 우리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왜 인터넷 구조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일까? 인터넷은 50년대 후반 소련에서 스푸트니크호가 발사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핵전쟁에 대비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어떤 대형 폭격에도 파괴될 수 없는 탈(脫) 중심적인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발상이 오늘날 기적과 같은 인터넷의 번영을 일궈냈다.

지금 한국 사회에 그 어떤 위기라는 게 있다면 그 위기의 상당 부분은 조명탄 하나만 터져도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이 들끓는 초강력 중앙집중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노 정권은 분권화와 그 정착을 위해선 한동안이나마 강력한 권력이 요구된다는 역설을 무시하고 권력 핵심부를 대상으로 먼저 분권화 및 '무장해제'를 해버린 무모한(또는 용감한) 노선을 취하고 말았다. 깊은 뜻이 있어 한 일이겠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만만치 않다. 그 점에 대해 비판을 하더라도 지지율을 억지로 떨어뜨리려고 애쓰는 식의 비판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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