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지 지음·남상욱 옮김 미디어2.0 발행·1만1,500원'오겡키데스카'는 '킹콩'으로부터 나왔다?
영화 '러브 레터'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연인이 조난당해 죽은 산을 앞에 두고 여주인공이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세요?)라고 소리치는 모습일 것이다. 그 아름다운 영화가 조금도 비슷한 구석이 없어뵈는 영화 '킹콩' 때문이었다고 감독 이와이 지(40)는 유머러스하게 털어놓았다. 영화 에세이 '쓰레기통 극장'에서다.
중학교 때 영화 '킹콩'을 보기로 친구와 약속한 날, 막 출발하는 버스를 세우려다 미끄러져 타이어에 발을 밟혔다. 무섭게 부어오른 소년의 발에 놀라 버스 기사는 승객을 전부 내려놓고 병원으로 갔다. 치료하느라 한참 학교를 못갔는데, 친구들이 카드가 가득 담긴 종이봉지를 들고 문병을 왔다. 반 전체가 학급회의 시간 내내 위로 카드를 썼단다. 10여 년 뒤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그 수북한 카드를 꺼내봤다. '얼른 회복해야 해'라고 쓴 여자애들의 편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그린 시시껄렁한 그림…. '편지'라는 착상은 그렇게 얻어졌다. "생각해보면 '러브 레터'의 발상은 '킹콩'때문에 나왔다."
'쓰레기통 극장'이라는 제목은 의미있다. 이와이의 표현을 빌면 '쫀쫀한 평론가라면 절대 소개하지 않을 법한', 제목대로라면 '쓰레기통에서 뒤져낸 것 같은'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많은 드라큘라 영화 중 1972년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드라큘라 72'라는 제목이 붙은 영화, 명작 '생쥐와 인간'인 줄 알고 한참 보다가 괴상한 TV시리즈물임을 뒤늦게 깨닫고 '사이비 생쥐와 인간'으로 이름붙인 얘기가 유쾌하다. 그가 가장 권한다는 영화는 어이없게도 '불가사리'다. 연출이 매우 한심스러운데 그게 매력이라고 촌평을 달아놓았다. 이와이가 보기에 좋은 영화란 그것을 떠올렸을 때 모든 애틋한 기억들이 살아나는 영화다. 이 책과 함께 이와이가 쓴 장편소설 '월리스의 인어'도 함께 번역출간됐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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