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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대한 항해자 마젤란/항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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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대한 항해자 마젤란/항해지도

입력
2003.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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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환상, 용기와 지혜, 그리고 음모와 배신.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항해에는 인간의 희망과 좌절이 가장 거칠고 치열한 형태로 녹아 있다. 조지 스티븐슨의 보물섬, 율리시스의 모험, 멜빌의 백경…. 그래서 바다를 무대로 한 신화·소설은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하다. 이번 주에 나란히 번역 출간된 2종의 해양소설에도 이런 재미가 물씬하다. '위대한 항해자 마젤란'은 배로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룬 마젤란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역사적 사실주의가 돋보인다. 18세기를 무대로 한 '항해지도'는 보물선을 둘러싼 바다 위의 추격전이 박진감 있게 그려진 해양 스릴러 소설이다.

"로마에서 둘째가 되느니 차라리 시골에서 첫째가 되어라."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부의 손에 이끌려 시종(侍從)학교에 입학한 마젤란(1480∼1521)은 노 교사가 한 이 말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이 말은 르네상스기 포르투갈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지방 관료로 자리잡는 출세를 의미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아메리고 베스푸치, 바스코 다 가마나 항해자 엔리케의 뒤를 잇는 대항해의 꿈. 그에게 '첫째'란 상업 항로를 개척하고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사가(史家)들이 전하는 마젤란의 모습에서는 특별히 긍정적인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중상모략으로 항해의 꿈을 실현할 수 없게 된 마젤란은 결국 조국을 버리고 스페인으로 향했기 때문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를 탈영병으로 간주했다. 스페인 왕의 총애를 받는 이국인을 스페인 사람들이 곱게 봤을 리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수많은 자료를 종합한 뒤 재구성한 평전 형식의 이 역사해양소설에서 마젤란을 고위층 귀족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소외받지만 대항해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 꿈을 실현한 큰 인물로 그리고 있다. 1권은 필생의 항해를 시작하기 전까지 마젤란의 성장과 포르투갈을 떠나는 과정,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양 개척 상황 등이 담겨 있다. 항해의 생생함은 스페인을 선택한 후 카를로스 1세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함대를 꾸려 먼 바다로 떠나 결국 필리핀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과정을 그린 2권에 주로 담겨 있다. "배들은 조용하고 쾌적하게 흔들렸다. …안개 같은 연기가 어두운 수면에서 올라왔다. …카라벨선의 등은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그 위에 종이를 덮은 것처럼. 작은 파도가 트리니다드 호의 선벽을 핥고는 입맛을 다시며 낮게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는 대목에는 항해의 풍경이 선연하다. 마젤란이 정수리와 다리에 상처를 입고 이국의 해변에서 쓰러져 생애를 마치는 장면에서도 간결한 글맛이 살아 있다.

달리 본다면 마젤란은 일개 정복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논란을 넘어 서 있다. 시종학교 시절 친구 세하웅은 마젤란에게 "우리 시대는 도덕적으로 황야와 같아"라고 말했다. "위험 없는 인생사가 어디 있겠나!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좁고, 자칫 빠지고 말 구멍이 수도 없이 많은 거잖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호머의 통나무배들이 트로이를 향해 떠나기 전부터 입가에 주름이 깊게 패이고 11월의 비처럼 우울한 마음을 지닌 사내들이 있다. 그들은 늘 권총으로 자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바다는 하나의 해결책이었고, 그들은 떠날 시각이 언제인지 항상 알고 있었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52)는 장편 '항해지도'에서 바다가 늙고 의뭉스러운 망나니 하나를 숨기고 있다고 적었다. 바다 사람들은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망나니'라는 비유는 적절하다.

'항해지도'는 바다에서 쫓겨난 사내가 바다로 돌아가기까지의 얘기다. 바다 사람이 육지 사람들과 섞이면서 부대끼는 체험은 그 자체로 음모와 배반의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은 발상, 예기치 못한 반전 등 '머리를 써가면서' 독서해야 하지만 읽는 맛이 여간 아니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의 명성답다.

5년 간 역사 자료를 정리하고 13개월 간 지도학, 조선학 등을 공부했으며, 1년 반에 걸쳐 집필한 소설이다. 복잡한 구성과 치밀한 추리 기법이 돋보인 이전 소설 '뒤마클럽'이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보다는 많이 쉬워졌지만 지식의 방대함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직 항해사 코이가 해양 경매소에서 박물관 큐레이터인 탕헤르라는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침몰선 인양회사 사장인 팔레르모와 경합한 끝에 18세기 우루티아 해도를 낙찰 받았다. 그 지도는 예수회 소속 범선인 데이 글로리아호가 기독교를 탄압하는 카를로스 3세에게 뇌물을 전하기 위해 200개의 에메랄드를 싣고 가던 중 침몰한 지점의 단서가 담긴 것이다.

18세기 보물선을 찾는 코이와 탕헤르의 뒤를 팔레르모가 좇으면서 전개되는 모험은 흥미진진하다. 그만큼 타락한 육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로지 바다와 맞붙어 사는 것이 삶인 바다 사람에게 육지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잘못 인도해서 결국 길을 잃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품고 있는 곳이다. "바다에 비치는 한줄기 빛, 해변 물밑에서 아직도 미스터리와 모험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레베르테는 말한다. 그는 '항해 지도'를 통해 우리가 이제는 멀어졌다고 생각한 모험에의 열망을 되살려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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