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13일 세제 개편과 사회복지 축소를 골자로 하는 경제 개혁안을 내놓았다. 수년째 계속되는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로 나라 안팎에서 위기설에 시달려 온 독일 정부의 야심찬 카드가 과연 효과를 거둘지 주목된다.이날 각의를 통과한 경제·사회분야 정부 개혁안의 핵심은 세금을 줄이되 사회복지도 함께 축소해 내수와 투자를 활성화시키면서 중앙정부의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우선 세제와 관련해서는 2005년으로 예정됐던 소득세 인하를 내년으로 앞당기고 대기업에만 적용해 온 영업세를 의사와 변호사 등 자영업자에게도 확대 적용하는 한편 기업이 국내외 법인 영업실적을 통합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없앴다.
복지 부문에선 영세민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조금과 실직자에게 나오던 실업수당을 통합해 정부의 보조금 지급규모를 줄이고, 능력이 있으면서도 구직 노력이 미약한 실업자에 대해 규제를 강화했다. 아울러 지자체 지원금과 공무원 및 공공기업 노동자에 대한 보조금 등을 없애거나 대폭 줄였다.
게르하르트 슈뢰더(사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제·사회 개혁 프로그램(아젠다 2010)의 핵심 정책들이 마련됨으로써 경제가 되살아날 것을 기대한다"면서 "특히 영세민 사회보조금과 실업수당을 통합한 것은 '복지국가 독일'의 역사상 가장 큰 사회적 변화"라며 이번 조치의 과감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슈뢰더의 기대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부가 이미 실시중인 개혁정책 상당수가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높아 이날 발표된 정부안 역시 앞으로 하원과 특히 야당이 다수를 장악한 상원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성향의 야당 기민·기사연합은 특히 대기업에만 부과되던 영업세를 고소득 자영업자에게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대중의 경제회복에 대한 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최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가 이번 조치로 10%를 넘나드는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날 "지난 2분기 경제가 다시 성장할 것을 기대했으나 1분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약세를 보여 실망했다"고 괴로운 속내를 비쳤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의 0% 성장을 예상해 왔다.
일부에서는 최근 미국 등 세계 경기의 회복 조짐에 더해 이번 개혁안의 효과가 나타날 경우 내년 상반기부터는 독일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 구조적인 문제로 하락세를 걸어온 독일의 경제체제가 예전의 역동성을 되찾을 지는 단기간에 판가름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獨 장기침체 원인
품위 있게 잘 나가던 세계 3위의 경제대국 독일이 장기침체에 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1950년대 연평균 7.9%에서 60년대 4.5%, 70년대 2.7%, 80년대 2.6%, 90년대 1.4%로 계속 하강추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0.2% 성장에 그친 데 이어 올해에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우려된다.
반면 실업률은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렸다. 60년대 0.97%로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실업률은 70년대 8.22%로 뛰어올랐다. 올 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3위인 11.2%를 기록했다.
미국·영국·한국언론들은 대개 침체의 원인을 복지 혜택은 많고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는 반면 노동시간은 적고 임금은 지나치게 높다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러나 80년대까지 선진국으로서는 높은 2.6% 이상의 성장률을 성취한 점을 고려하면 노동 쪽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지적이 많다.
독일 학계에서는 9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경제침체의 직접적인 원인을 통일 비용으로 보고 있다. 당시 집권 우파 기민련의 헬무트 콜 총리는 90년 10월 3일 통일과 함께 동독을 급속하게 세계 시장경제 체제로 편입시키면서 큰 무리수를 두었다.
특히 마르크화 통합에서 당시 동서독간 실질 환율(5대 1 정도)을 무시한 채 1대 1 맞교환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동독 지역 기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동독 경제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
콜 정부는 동독 지역 붕괴를 막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수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다 사회통합 차원에서 동독 지역에 서독과 동일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혜택을 부여하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흘러갔다. 이러한 통일 비용이 현재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인 750억 유로에 달한다.
유럽통합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유로화 도입에 따라 국가별 재정적자 규모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토록 의무화함으로써 독일 경제 운용의 자율성도 크게 제한됐다. 기업들은 유럽 시장 통합으로 비용이 싼 동유럽으로 빠져나갔다.
이러한 통일 후유증과 유럽 통합 강화에 따른 부작용은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침체라는 큰 흐름과 겹쳐 더더욱 첨예하게 드러났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저달러 정책으로 유로화가 평가절상되면서 수출이 줄어 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베를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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