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전시와 함께,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청소년 미술 교육도 병행하는 성곡미술관의 기획프로그램 '미술의 시작'이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관객이 현대미술을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미술관이 1999년부터 해온 여름방학 연례기획이다.올해는 '현대미술, 어떻게 만들어지나'를 주제로 한국화, 서양화, 조각 3부문에서 각각 이숙자, 최만린, 황용엽씨가 참여했다.
최근 10여 년 간 보리밭을 소재로 세밀한 극사실화를 그려와 '보리밭의 화가'로 불리는 이숙자(61)씨는 '창넘어 보리밭' '이브의 보리밭' '자화상이 있는 보리밭' 등 작품을 출품했다. 이씨는 한지를 5지 배접해 아교와 백반을 칠하고 다시 먹을 칠해 바탕을 만든 뒤, 보리 이미지 드로잉을 하고 이쑤시개로 모양을 정리하는 등의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보리밭이 펼쳐지는 전원 풍경은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구조 전환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한국적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는 현장"이라며 "보리밭을 그릴 때면 가슴 속에 실타래처럼 얽힌 어떤 것이 한 올 한 올 풀려나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국내 1세대 조각가 최만린(68)씨는 독립기념관 통일기원동산에 세워진 높이 7m 지름 80m의 통일기원탑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탑신 조형 및 내부 골조 작업, 조립, 종각 설치 등 과정이 설명된다. 생명에 대한 신뢰, 자연에 대한 애정을 담은 브론즈 작품인 '맥' '태' '점' 연작도 전시한다.
원로 서양화가 황용엽(72)씨는 '사람'을 소재로 한 자유로운 드로잉과 회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그에게 사람은 한 시대의 상황이자 스스로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경험한 극한상황이 사람을 그린 이유가 됐다고 그는 말한다. '삶 이야기' '나의 이야기' 등 작품을 설명하면서 연필 스케치에 이어 테레핀을 이용한 번짐 효과, 먹 뿌리기, 지우개 터치 등의 기법으로 황씨가 그려 보여주는 추상화된 인간은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의 미로, 숙명을 견뎌야 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매주 화∼금요일 오후2시, 토·일요일 오후2시와 4시에 작품설명회가 열린다. 16일 오후2시에는 황용엽, 23일 오후2시에는 이숙자씨가 관객과의 대화 및 작품제작 과정 시연회를 연다. (02)737―765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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