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와 여진은 우리 고대사의 주변부에 속할 듯하다. 역사 공부의 큰 줄기가 삼국에서 통일신라, 고려로 급히 흘러간 까닭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연해주 주립 박물관에서 발해·여진의 유물을 만나게 되면 깜짝 놀란다. 1,000년 전 우리 고토에서 존망을 다투거나 공존하던, 따라서 우리에게 약간의 피도 섞였을 발해인의 자취를 러시아에서 만나게 되다니…. 가재도구나 농기구, 무기 등이 만만치 않은 문화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만주, 연해주 등 동북아의 광대한 영역이었다. 발해사를 연구하려면 블라디보스토크를 빼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순식간에 까마득한 옛날로 안내하는 것이 박물관의 매력이다.■ 세계 최대의 박물관은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다. 18개 건물이 거대한 단지를 이루고 있는 스미소니언은 연간 2,000만명의 전세계 관람객을 불러 모은다. 거기에는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아폴로 11호 사령선,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 등을 소장한 항공우주박물관도 있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미술기획전이 열리면서 시민의 교양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 된다. 근래 박물관건립은 각국의 주요 국책사업이 되었다. 일본은 1977년 오사카에 대규모 국립민족학박물관을 지었다. 한민족을 포함한 세계 주요민족의 역사와 관습,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 부럽기만 하다.
■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이 2009년에는 어디론가 옮겨질 예정이다. 경복궁 복원사업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속박물관은 하루 2,000명의 관람객을 예상한 규모인데, 매일 그 6배 정도의 관람객을 수용해야 할 정도로 비좁아졌다. 소장품 수장고와 박물관 교육장, 전통예술 공연장 등 부대시설도 옹색하다. 박물관 측은 최우선의 이전 희망지로 용산 미군부지를 꼽고 있다. 미국 일본 부럽지않게 전통민속문화를 계승하고, 내국인을 위한 휴식공간이자 외국인에게도 관광명소화하는 '문화의 숲'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다.
■ 희망하는 부지와 건축면적도 지금의 10배 이상 되는 규모다. 오히려 만시지탄이나, 민속박물관이 고궁을 벗어나 자립 터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마침 누대로 외국군 주둔지였던 용산 땅이 반환된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당초 '대란'이 우려되던 교통상황이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협력하는 시민의 성숙함이 자랑스럽다. 이 위에 용산 미군부지 한 쪽이 시민의 휴식처인 공원과 박물관이 공존하는 '문화의 숲'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근사한가.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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