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2000년 총선에서 110억원을 조달해 사용했다는 주장은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 그가 현대로부터 거액을 받았느냐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규명되겠지만, 110억원은 또 다른 얘기다. 당시 민주당은 새 천년을 맞아 새 정치를 주도하겠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출범했다. 당에 대표와 사무총장 등 공조직이 있고 선거대책본부장을 따로 임명하는 등 공식기구가 있었음에도, 권 전 고문이 거액의 선거자금을 주물렀다는 것은 공당이기를 스스로 부정한 행위다.권 전 고문은 "총선 때 두 사람으로부터 50억원씩 빌렸고, 김영완씨에게서도 10억원을 따로 차용해 썼다"면서 "이중 상당액은 갚았으나 김씨로부터 빌린 10억원 등은 아직 갚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무엇을 노리고 이 같은 진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베일에 가려 있던 2000년 총선 흑막의 일부가 드러났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권 전 고문이 누구의 지시에 따라 거액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했으며, 민주당의 어느 후보가 무슨 명목으로 어느 규모의 자금 지원을 받았는지 등은 명명백백하게 진상이 공개돼야 한다.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을 맴돌고 있는 정당정치의 개혁을 위해서 뿐 아니라, 3김 정치의 유산인 비선에 의한 막후정치의 청산을 위해서도 그렇다.
권 전 고문이 집중지원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도권의 신진 인사들과 영남권 후보들은 한결같이 이를 부인하고 있다. 민주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외부자금이 한푼도 유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가 지나서 110억원의 차입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수긍할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결국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힐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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