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 수수 혐의로 세 번 째 구속 위기에 몰린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치열한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권 전 고문측은 전날에 이어 13일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여당 총선 자금 문제에 연관돼 있음을 흘렸다. 또 "권 전 고문을 통해 당에 들어온 돈은 없다"는 당시 당 지도부의 입장을 뒤집는 등 연일 발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권 전 고문측 이석형 변호사는 이날 권 전 고문이 '돈이 없으면 빌려서 쓰라'는 김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10억원을 모아 당에 전달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권 전 고문의 한 비서도 기자들에게 같은 취지의 설명을 했다. 모두 김 전 대통령의 총선 자금 조달 개입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얘기들이다.
당 안팎에선 DJ에 대한 충성심이 유별난 권 전 고문에게서 DJ 관련 언급이 나온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우선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는데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니 파장을 미처 예상치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DJ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 아니라, 자신은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 전 고문이 여차하면 DJ, 더 나아가 현 여권 핵심부 관련 카드를 꺼내 검찰과 현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찮다.
권 전 고문이 현대 돈 수수는 부인하면서 스스로 110억원 규모의 '총선자금'을 조성했다고 털어놓은 속셈도 궁금한 부분. 이는 불법 또는 편법 자금의 민주당 유입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것으로 당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선 "앞으로 법정에서 돈의 성격을 놓고 검찰과 벌일 법리 싸움을 의식, 자신이 받은 돈이 뇌물이 아니라 순수 정치자금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뇌물이라면 처벌을 피할 수 없지만, 정치자금이면 공소시효가 지나 가벌성이 없다는 점을 의식했을 수 있다. 권 전 고문측이 "검찰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권 전 고문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부각, 여론의 동정을 얻어내기 위한 계산된 행보라는 주장이 많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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