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아름다운 장식을 하고, 가장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로 간다. 그러기에 화장(化粧)이라는 행위와,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행위는 인간애로부터 기인한 숭고하고도 고귀한 작업이다. 이는 어제오늘에 생겨난 문화가 아니라 그 역사가 자못 장구하지만, 단지 근대적 예술관이 요구하는 '단일한 창조적 주체'라는 개념의 모호함 때문에 예술의 영역에 포함될 엄두를 내지 못했다.나로서는 메이크업과 패션디자인, 그리고 보석디자인을 예술의 영역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자체가 진부하다는 생각이다. 예술은 일차적 필요조건을 독창성과 영원성이라 규정하고 있다. 여기 비춰보자면 사람의 얼굴이라는 캔버스에 저만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페인팅하는 화장술은 지극히 창조적인 행위다. 나는 여인의 얼굴을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화장이라는 인간 행위에 대해 향수자로서의 외경심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보석디자인이라는 행위도 디자이너와 세공사가 창조적 자세만 갖춘다면 기존의 예술과 수위의 자리를 다툴 만하다. 회화의 소재인 비단이나 종이나 안료와 먹보다도, 영화의 매개인 셀롤로이드 필름에 담긴 피사체의 형태와 음향보다도, 보석디자인의 소재인 보석은 그 영원성이 확고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독창성에 있을 게 틀림없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충족시키는 서울의 한 보석 갤러리를 알고 있다. 홍성민과 장현숙이라는 젊은 부부 보석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쥬얼리숍이 그곳이다. 그들은 소비자가 주문하는 대로 생산하는 기술자의 제품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만드는 창조자에 걸맞는 자존심과 실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1996년부터 '아트 투 웨어(Art to Wear)'라는 쥬얼리쇼를 해왔는데 지난해 10월 여섯 번째 쇼가 열렸다. 이들은 거기서 가족의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60여 점의 보석 장신구를 '인생'이라는 주제로 선보였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지켜가는 사랑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보석 작품에 투영한 전시였다.
이 작품들은 저마다의 독창성과 미적 품격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보석 장신구를 인체에 부가하는 예술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장신구를 패용하는 사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을 제작할 뿐이다. 따라서 모든 작품은 저마다 사람이라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라는 고유한 미덕을 독창적으로 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애와 명예심이야말로 예술가가 지향하는 창조적 자세의 근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보석 장신구를 사치품의 영역 혹은 상품의 진열장에서 창조적 예술품의 진열장으로 옮겨놓고 싶은 까닭이다.
/심상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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