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음역에서 미세하게 떨며 살짝 넘어가는 바이브레이션 창법이 특기인 박정현. "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보조개를 깊게 패어 보이며 살짝 웃는다. 2001년 가을 입학한 대학(미 콜럼비아대 영문과)의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른 그가 짧은 활동을 마치며 23일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콘서트 다음날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음악 공부를 안 하고 왜 문학공부를 하느냐구요? 문학을 공부하며 간접체험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쉼 없이 살 때는 느낄 수 없는 생활의 감동도 느끼고. 크게 보면 음악하고 노래하기 위한 공부죠."
학교 생활은 낭만적인 '뉴요커'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친구들과 메신저로 수다를 떨던 재미도 포기했다. 숙제가 쌓일 때마다 "왜 시작했나"하고 한숨을 내쉰단다.
"중고등학교 시절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혼자 끼적거린 소설도 많다. "인기도 없고, 왕따 당하는 주인공이 항상 등장했어요. 마법의 힘으로 어느날 갑자기 영웅으로 변신해서 어려움에 빠진 친구들을 구해요. 황당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장대처럼 큰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 동양인 교포 여학생이 느꼈던 콤플렉스가 깔린 것 같다는 분석. 키 155㎝의 그는 여전히 작지만 그런 체구 덕분에 그의 노래는 오히려 빛을 발한다. 따뜻하고 견고하게 들린다. 그래서 박정현은 비디오형 가수다. 듣기만 할 때의 감동은 공연장에서 직접 노래를 들을 때의 감동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의 공연이 언제나 매진을 기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하루' '아무말도, 아무것도' '오랜만에' 등 발라드를 부를 때는 상처 받은 소녀 같은 그의 표정이 묘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You Mean Everything To Me'나 '요즘 넌' 등을 부를 때 방방 뛰며 무대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애교가 넘친다.
무대에 자주 서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일까. 그는 지난달 2장짜리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데 이어 공연 실황을 담은 DVD도 발표했다. 무대에서 그와 관객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교감을 실감할 수 있다.
"곧 다시 올 거예요." 그는 가을 학기가 끝나면 다시 들어와 5집을 발표할 예정이다. 학교는 또 다시 휴학해야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는 없다. 공부도 노래도 놓치지 않으려는 작지만 당찬 모습이 얄미울 정도로 부럽다. 공연은 23일 오후6시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1544―1555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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