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시집온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다. 코흘리개이던 슬하의 아들과 딸이 이제는 장성해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딸 아이가 서울에서 자취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무덤덤했던 우리 부부였다. 그런데 아들이 기숙사 배정 추첨에서 탈락해 충북 청주시의 변두리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걱정이 앞섰다.
남편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고생해선 안되지" 하더니 아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몽땅 장만해 아예 트럭에 싣고서는 청주로 갔다. 남편은 돌아와 부자가 둘이서 오랜만에 냄비에 밥을 해먹었다면서 즐거워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우리 부부의 70년대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문제는 그 이후로 남편이나 내가 서울이나 청주에 볼일이 있을 때는 으레 아이들이 필요한 반찬이나 생필품을 챙겨 주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들이 사는 곳과 딸이 사는 곳을 번갈아 가며 들른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싱싱한 생선 횟감까지 사서 가는 날은 나도 모르게 즐겁고 바빠진다.
내 모습이 옛날 처음 시집왔을 때 시골에서 추수한 각종 과일과 쌀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나를 찾아 오시던 어머니와 비슷한 것 같아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내가 벌써 그런 입장이 되다니….
지난 주에도 남편과 함께 서울에 갈 일이 있어 분주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 과일, 그리고 간식을 잔뜩 준비했다. 남이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짐이 많았다.
밤중에 아들 집에 도착해서 들어가는 데, 아들이 몰래 준비한 카메라로 우리의 모습을 찍었다. 그러더니 대뜸 "부모님 모습이 봇짐 싸 들고 올라오는 시골 노인네들 모습과 똑같다"고 하지 않는가.
주변에서 아직 나이에 비해 10년 이상은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어온 우리 부부로서는 약간은 섭섭했다.
물론 아들이 고맙다는 뜻으로 한 말이기에 기분은 좋았다. 비록 없는 살림이지만 이것이 가족간 우애이고 동시에 대 물림되는 부모 마음이니까….
짐을 다시 꾸려 딸 아이가 있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서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계속되는 짐꾼 노릇에 그이의 손이 거칠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딸 아이는 먹을 것을 잔뜩 가져오는 우리 부부에게 어떤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말할까. 괜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우리 보고 시골 노인네들이라고 놀리면 어쩌지….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박광희·부산 금정구 구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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