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거 매집하면서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계열사들의 지배구조 변동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국인들은 정 회장 사망 이후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오토넷 지분을 집중 매입하고 있는 반면 비자금 논란을 빚고 있는 현대상선 등의 주식은 조금씩 팔고 있다.증시 전문가들은 일단 현대엘리베이터가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데다 앞으로 독립경영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 외국인 투자를 촉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선장'(고 정 회장)을 잃은 현대의 경영권을 겨냥한 매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소버린이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의 대주주로 홀연히 등장한 것처럼 이번 대량 매집을 통해 '제2 소버린'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가도 4일째 상한가
12일 거래소시장에서 외국인들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45만9,000주(8.18%)나 한꺼번에 사들였다.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집중 매수했으며 SSB증권 창구로도 10만주가 거래됐다. 외국인들은 정 회장 장례가 치러진 8일 상장 이후 처음으로 9만8,000주(1.75%)를 매입한 이후 3일 연속 순매수에 나서면서 지분율을 10.39%대로 높였다. 이 같은 외국인들의 매수에다 최대주주인 고 정회장의 장모인 김문희씨의 지분 정리설이 돌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4일째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며 2만1,750원으로 급등, 1999년 말 이후 4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회사측은 외국인 매수 주체, 배경과 자금 성격, 지분 동향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 15.16%와 현대택배 지분 18.67%를 확보하고 있는 사실상의 MH계열 지주회사로 고 정 회장의 장모인 김씨가 대주주로 18.57%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는 엘리베이터와 상선을 통해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의 지배구조가 바뀔 경우 현대 계열 주력 7개사의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주주인 김씨는 외국계 엘리베이터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한 2001년 4월 이후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지분을 꾸준히 매입했다. 그러나 현대그룹 계열사를 비롯한 우호지분 31%(180여 만주)의 시가총액이 370억원(주당 2만1,000원 기준)에 불과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한 편이다.
독립경영과 실적개선 맞물려
외국인들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입에는 미국과 유럽 홍콩계 펀드들이 다양하게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증권 송준덕 연구원은 "현대엘리베이터는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인 저평가 가치주였으나 그룹 리스크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주식"이라며 "집중 매수에 나선 외국인들은 인수합병과는 무관한 장기 투자 펀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엘리베이터와 물류시스템, 지하철 안전문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이익이 급증해 올 상반기에 흑자로 전환하는 등 앞으로 3년간 수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에 현대엘리베이터가 독립경영에 나설 것이란 기대까지 가세하면서 외국인들의 매수세에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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