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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24>게이트의 사슬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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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24>게이트의 사슬 ⑦

입력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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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건 때 50년 선후배로 지내온 정재철 의원한테 선거자금 5,000만원을 받았다가 혼이 났던 내가 돈을 받았겠느냐."2002년 5월31일 서울지법 법정.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한 1심 첫 공판이 열리자 울분이 북받친 듯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가까스로 말을 이어갔다. 이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3년 7월2일, 권 전 고문은 법정에서 또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2심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

권 전 고문의 공소 사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2000년 7월 초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이 권 고문의 특보로 있던 최규선씨 관련 보고를 하기 위해 진씨를 대동하고 권 고문의 집으로 찾아가 "진씨가 금감원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일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놓고 왔다.'

2심 재판부는 권 전 고문의 집 현장 검증 결과, 진씨가 진술한 집안 구조가 실제와 달라 진씨가 권 전 고문 집에 가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또 김 전 차장이 최씨 관련 얘기를 했을 때 권 전 고문이 화를 낸 정황에 비춰 김 전 차장의 청탁과 돈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결론 내렸다. 김 전 차장과 진씨의 진술을 완전히 배척한 것이다.

2심 재판 결과대로라면 김 전 차장이나 진씨는 거짓말을 한 셈이고 검찰은 이들의 진술만 듣고 권 전 고문을 기소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김 전 차장과 진씨는 왜 '물귀신 작전'을 쓴 것일까.

권 전 고문측 문형식 변호사의 얘기. "김 차장이 진씨 회사에 들어앉힌 김재환씨는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가 착수되자 도망갔다 뒤늦게 나타나 조사를 받았다. 그 때가 김 차장이 구속된 뒤 4개월이 지난 2002년 4월이다. 김씨의 진술을 보면 김 차장이 부하직원을 동원, 김씨를 폭행하고 김씨가 김 차장의 은행 빛 8,500만원을 갚아준 것 등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김 차장이 그동안 조용히 있다가 왜 김씨가 조사를 받자 권 전 고문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했겠느냐. 김 차장은 1심 재판이 끝나 항소심 선고를 2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만약 검찰이 직권남용과 금품수수액을 추가기소할 경우 김 차장은 항소심에서 형량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전 차장이 권 전 고문을 물고 들어가는 대신 검찰에서 추가기소를 면제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인 것이다. 실제로 김 전 차장은 2001년 12월 검찰조사 때는 "이름을 댈 수 없지만 (진씨가) 상당한 실세에게 돈을 줬다는 내용의 첩보가 있어 확인해보니 전부 유언비어였다"고 진술했었다.

권 전 고문측은 김 전 차장이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뒤 미국으로 출국한 것에도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심 재판의 증인인데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변호사는 진씨 진술에 대해서도 "진씨가 도피할 때 김 차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줬기에 김 차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김 전 차장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 다른 의문. 김 전 차장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길래 권 전 고문을 찍었느냐는 것이다. 권 전 고문의 얘기. "1996년 내가 국회 정보위에서 활동할 때 김은성이 수석전문위원으로 국회 파견 근무를 나왔는데 내가 공개적으로 반대해 그 때부터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것 같다."

권 전 고문과 김 전 차장의 관계는 최규선씨 문제로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2000년 6월께 김 차장이 권 고문의 특보인 최씨에 관해 부정적 보고를 청와대에 올리자 권 고문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권 고문 집에서 돈을 전달했다는 그 날도 김 차장은 청와대에 올린 보고에 대해 해명하려 했으나 권 고문이 "유언비어 갖고 보고하지 말라"고 면박을 줬다.(4월23일자 본란 참조) 혹을 떼려다 오히려 붙인 꼴이 된 것이다.

4개월여 뒤 '김 차장의 대검 방문', '진씨 구명로비설'이 보도된다. 이를 계기로 2001년 초부터 여권 핵심부에선 국정원 2차장의 교체설이 비등했다. 여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곧 김 차장에게 감지됐고 김 차장은 진원지를 권 전 고문으로 지목했다. 이 와중에 '분당 파크뷰 택지 용도변경 과정에 권 고문이 개입, 특혜를 줬다'는 소문이 퍼진다. 김 차장은 즉각 청와대에 "권 고문이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고위 공무원 등이 대거 파크뷰를 분양받은 의혹이 있어 제2의 현대아파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보고를 올려 "국정원이 조치하라"는 지침을 받는다.

국정원 관계자 A씨의 증언. "2001년 3월 파크뷰 분양이 완료되자 김 차장은 권 고문을 잡을 수 있는 호기라고 판단, 정성홍 과장 등에게 분양자 명단을 은밀히 파악토록 지시했다. 그런데 1,800여명의 분양자중 유력인사와 고위 공무원 판·검사 등 130여명을 추려냈으나 정작 권 고문의 이름은 없었다. 또 일부 인사가 선착순 분양에 앞서 사전분양 받는 편법사례 외에 용도변경을 대가로 한 '아파트 뇌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국정원의 파크뷰 분양자 명단 조사가 실상은 자신의 교체론을 거론한 여권 핵심부에 대한 반격이었던 셈이다. 이런 정황에 비춰 보면 권 고문에 대한 김 차장의 응어리진 앙금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전 고문측은 검찰쪽에 대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권 전 고문측 이훈평 의원의 얘기. "당시 검찰은 고위간부들의 수사기밀 누설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밖으로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을 아무리 소환해도 전부 버티기로 나와 검찰의 위신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권 고문이 구속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소된 것 아니냐." 검찰이 내부위기 돌파를 위한 희생양을 찾던 상황에서 권 전 고문의 이름이 나오자 짜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주임검사인 홍만표 검사의 반박. "진승현은 권 고문 집에 10초밖에 있지 않았고 그것도 2년 전인데 어떻게 기억하겠느냐. 기억하는 게 무리다. 항소심에서 김은성 정성홍을 불러 물어보지 않고 무죄라고 했는데 승복할 수 없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김은성, 최규선과 생존게임 홍걸 등에 업은 崔에 완패

2001년 3월25일 최규선씨는 내연관계인 Y씨에게 전화를 돌렸다. 3·26 개각이 발표되기 하루 전이었다.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에 내 사람이 다 들어갔다. 만세!" "전부 내 뜻대로 되는데 당신만 왜 그리 속을 썩이느냐…." 최씨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Y씨를 달랬다. Y씨는 당시 최씨와 사소한 다툼으로 토라져 있을 때였다. 최씨는 이어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에 임명될 김동신씨와 신건씨에게도 자신의 공치사와 함께 입각 내용을 귀띔하고 미리 축하 인사까지 전한다.

최씨와 Y씨 두 사람만 알 법한 일이 여권에 알려진 것은 당시 국정원이 최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기 때문. 최씨가 개각 며칠 뒤 신 원장과 김 장관에게서 '공'을 인정 받아 국정원장실을 방문하고, 국방장관 공관에 초청돼 김 장관과 만찬을 한 일도 죄다 국정원의 감시망에 걸려든다. 은밀히 이뤄지는 여자문제도 속속들이 포착됐다. 최씨는 당시 DJ의 3남 홍걸씨를 통해 장관 인사에 입김을 넣을 정도였고 김 장관이나 신 원장도 그의 '숨은 공'을 인정한 것이다.

최씨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 동태를 낱낱이 파악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다름아닌 김은성 국정원 2차장. 그에 대한 밀착 감시는 최씨에 대한 김 차장의 피해의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 차장은 최씨를 홍걸씨와 떼놓기 위해 청와대에 보고도 하고 나름대로 '공작'도 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오히려 역공을 당했다.

김 차장이 2차장에 취임한지 한달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김 차장이 청와대에 최씨 문제를 담은 보고서를 올렸으나 그 내용은 금세 최씨에게 새나갔고, 최씨는 되려 '국정원 해체론' 보고서를 제출한다. DJ는 임동원 원장의 주례보고 때 '이런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라'며 최씨의 보고서를 건네줬다. 임 원장이 다시 "작성자를 알아보라"며 김 차장에게 지시하자 김 차장은 최씨의 막강한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권 인사 A씨의 얘기. "이 때부터 김 차장은 최씨를 솎아낼 방안에 몰두하게 됐다. 그래서 청와대까지 도청한 걸로 안다. 그 결과 청와대가 홍걸씨에게 주의를 주면 홍걸씨는 이희호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최씨를 두둔하면서 '국정원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도청해온 믿을 수 없는 기관'이라며 국정원 보고를 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무렵 김 차장이 당한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정치권을 담당한 국정원 관계자 I씨의 증언. "김 차장은 최규선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한번은 최가 김 차장을 불러내 김 차장을 수행하고 나가보니 최는 없고 홍걸씨가 나와 김 차장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본연의 업무나 신경 쓰라'고 얘기해 김 차장이 무척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김 차장과 최씨와의 생존게임은 최씨가 홍걸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탓에 항상 김 차장의 완패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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