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현대車 노조 죽이기
알림

[아침을 열며]현대車 노조 죽이기

입력
2003.08.13 00:00
0 0

다음은 누가 한 말일까?"현행 노동법은 정규직 보호에만 치중하여 문제가 있어 노동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노동 정책을 담당하는 노동부의 관리가 아니다.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정책의 내용이란다.

"노사 양측이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기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고, 이번 임단협으로 고용불안 요인을 해소하여 안정적 노사관계 확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고용안정을 편드는 이 말은 노동조합의 해명이 아니라 사용자 대표가 한 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열악한 조건을 도외시한 대공장 노동조합은 각성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는 노동단체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달 전 비정규직 보호 입법이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반대하던 바로 그 신문의 사설이다.

"노사가 합의하기로 한 단체협약 조항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악랄한 사용자나 노동법의 문외한이 아니라, 노동법의 원칙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부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 동안 화물연대, 조흥은행 파업 때는 정부가 개입해서 그르쳤다고 비판하던 그들이 현대자동차 노사의 자율적 협상 타결에는 정부가 방관했다고 비판한다. 시민단체에서 지배구조와 독과점의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할 때, "삼성전자, 현대차가 1류가 되면 우리나라도 1류가 된다"고 소리를 높이던 목소리가 '대표 기업'의 직원들이 대표적 근로조건으로 경쟁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억지를 위해서 그들은 사실 관계를 왜곡한다. 노동자의 경영참가로 회사가 당장이라도 망할 듯 흥분하는 '노사공동위원회'는 이번 단체협약에서 새로이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기구이고, 유럽 국가들의 전형적인 공동결정 제도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신기술의 도입, 신차종 개발, 작업공정의 개선, 경영상·기술상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전환 배치 등은 계획수립 즉시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의결한다'는 조항은 이전 협약에 그대로 있었던 내용이며, 이번에 새로 들어 간 것은 '신차종 모델 승인 즉시 조합에 통보한다'는 단서 조항뿐이다. '사업의 확장·합병 등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끼치는 경영상 중요한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의결한다'는 규정 역시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번 개정에서는 '90일 전에 노동조합에 통보한다'는 통보 기간에 관한 것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임금인상과 휴일 수에 대한 왜곡은 더욱 심각하다. 13년차 생산직 근로자의 연봉이 1,000만원 이상 인상되었다고 하지만, 성과급과 격려금은 지난해에도 지급되었던 것으로, 실제 늘어난 것은 450만원 남짓이다. 게다가 '세계 최장'이라고 과장하는 휴일을 다 쓰고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을 경우 13년차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연 3,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다시 객관식 문제. 다음 중 이상한 사람은?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한 사장님. 좋은 기업에 들어가 10년 넘게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게 된 노동자. 헌법에 쓰여진 대로 파업을 통해 임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노조원.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많은 기회를 가져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

보너스 OX 문제. 고졸 생산직 노동자는 서울대학교 교수보다 돈을 많이 벌면 안 된다? 다른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거나 강한 교섭력을 가진 노동자는 있을 수 없다?

초등학생도 쉽게 풀 수 있는 이 문제들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근거가 빈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엉뚱하게도 소비자가 결국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곁들인다. 그렇게 말해야 대부분 현대·기아차를 타고 있는 국민들을 확실하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날씨는 덥더라도,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문제를 풀어보자.

김 진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