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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8> 하모니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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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8> 하모니즘 선언

입력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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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에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조형주의'라는 나의 작품세계를 창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참뜻이 창조에 있다면 자기의 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는가. 남들이 해놓은 것을 모방만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아마추어 예술에 불과하다. 문제는 완성된 작품에서 창조적인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추상과 구상 작품을 나란히 늘어놓는 시도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예술가가 자기의 것을 가졌다는 것은 떳떳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하모니즘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 중 일부라도 그 뜻을 헤아리고 감동을 받으면 그만 아니겠는가.조형주의 미술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나의 세계를 찾으려고 했던 의지의 산물이며 한국전쟁 와중에서도 화우들과 만나 우리의 삶과 정신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내 신념의 결과이다. 음양의 조화는 동양문화의 기본적인 원리이며 이러한 원리를 나는 미술에 적용한 것이다. 이것이 조형주의의 출발이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바로 1977년 7월 워싱턴에 있는 IMF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조형주의 선언문으로 작성해 발표했다. '구상과 추상의 용해'라는 제목의 이 선언에서 나는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 어울리게 될 때 비로소 완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오묘한 조형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주미한국대사관과 IMF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 개인전의 제목도 '조형주의 선언'전이라고 이름 붙였고, 여기에 유화와 소묘 100여 점을 출품했다. 이 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해준 사람은 바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북한문제 권위자인 이정식 박사였다. 조형주의를 하모니즘(Harmonism)으로 처음 불러준 것도 그였다.

내가 구태여 선언문을 작성하여 기록으로 남긴 것은 후일 누군가 나의 작품과 유사한 것을 시도하여 발표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다. 내가 예측한대로 선언전이 끝난 2,3년 후에 조형주의와 비슷한 작품들이 뉴욕 화단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누가 조형주의를 창안했는지 그 근원이 오리무중될 뻔하였는데 이 선언문을 발표한 덕분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어쨌든 추상미술이 휩쓸고 있던 당시로서는 이러한 화법이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질적인 화풍의 두 작품을 하나로 동화하도록 한다는 것은 그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한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40여년 전 파리에서 귀국하여 연 전시회에서 내 그림이 파리에 가기 전보다 못하다고 혹평하던 기성 작가들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내 그림 앞에서 찬사를 보내던 젊은 사람들이 20여년 후 애호가로 성장하여 파리시대의 내 그림을 찾았다. 그리고 70년대에는 하모니즘 작품에 대해 기성층들은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내 작품을 이해한다면 나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예견은 들어맞았다. 뒤에 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프랑스 뤽상부르 미술관과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푸슈킨 미술관 전시에서 나의 하모니즘은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모든 문화와 예술은 시대와 더불어 변화한다. 나의 그림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추구했고, 변했다. 하모니즘을 선언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변화를 올바른 것이었다고 믿는다. 예술가는 언제나 시대를 파악하고 시대를 앞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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