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에 핀 우리 꽃들을 보고 느끼는 마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름은 그 다음이죠."벌개미취, 금불초, 버꾹나리, 며느리밑씻게, 둥근잎꿩의비름…. 우리 땅에 피는 우리 꽃들 이름이 왜 이렇게 생소하게 들리냐고 묻자 날아온 대답이었다.
말마따나 꽃말이 대수랴.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들판, 습지, 고산에서 생명을 키워오며 소리없이 우리 산하에 씨줄과 날줄로 생명의 씨앗을 퍼뜨려온 우리의 야생화가 아닌가.
경기 가평군 대금산 줄기에서 지난 5월 야생화 전문 수목원으로 처음 문을 연 '꽃무지 풀무지'. 화사한 햇살 속에서 1만4,000평의 산 능선에 국내 자생하는 야생화 1,000여종이 옹기종기 둥지를 잡고 있다. 야생화만을 찾아 지난 5년간 피땀을 흘린 원장 김광수(50)씨의 결실이다.
개장 한지 이제 석달 째. 아직 진입도로가 완전히 닦여지지 않았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숨은 진주'가 한눈에 펼쳐진다.
수목원은 크게 수생식물원, 습지원, 향기원, 국화원 등 14개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냇가와 연못을 중심으로 가꿔진 습지원에는 매발톱, 비비추 등의 국내 대표적인 들풀이 자리잡고 있고, 화사한 보랏빛 꽃을 피운 부처꽃 군락도 함께 어울려 은은한 빛을 낸다.
향기원은 알싸한 향들의 세계다. 백리까지 향이 미친다는 백리향을 비롯해, 노루오줌, 꿀풀, 층꽃 등의 진한 향을 맡으면 머리가 아찔해진다. '찌릉내'가 나는 쥐오줌풀도 한편으로 신기했다. 김 원장은 "요즘 향치료 방법이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미 세종대왕이 향치료를 권고할 만큼, 향을 내는 꽃풀들에 대한 관심이 일찍부터 높았다"고 설명했다.
금낭화, 매발톱, 붓꽃, 노란꽃창포 등 봄에 피는 야생화들이 이미 져버려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국화원에 이르자 때 이르게 가을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이방객을 맞이했다. 국화의 한 종류인 마타리가 무리를 지어 노란 꽃 잔치를 벌여, 벌써부터 가을정취가 느껴졌다. 또 약초원에는 최음제로도 쓰인다는 삼지구엽초를 비롯, 향유, 결명자, 바위구절초 등의 각종 약초가 늘어서 있었다.
김 원장은 수목원에 자리잡은 야생화들이 600여종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두 1,000여종. 다만 400여종은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서 그저 조심스럽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만 4,700여종에 이르는 만큼 아직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갈 길이 먼 것은 단지 종수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야생화 전문 수목원이 없었던 것은 주변 여건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야생화들이 눈에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하지 않은데다, 적절한 기후와 토양을 맞추기도 까다롭기 때문. 그래서 대부분의 수목원은 야생화 옆에 눈에 쉽게 띄고, 키우기 편한 개량종을 같이 가꾼다.
김 원장은 "이 고집을 언제까지 갖고 갈지 모르겠지만, 들판에 이름도 없이 피는 야생화의 멋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가평=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서울 북쪽에서 출발할 경우, 내부순환로를 거쳐 북부 간선도로로 타고 가다 구리 못 미쳐서 퇴계원 방향의 47번 국도로 접어든다. 퇴계원, 진접을 지난 후 현리 방향의 37번 국도로 우회전해 현리를 조금 지나면 대보리로 들어서는 좌회전 길이 나온다. '꽃무지 풀무지' 간판이 나와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 남쪽에서 출발하면 올림픽대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팔당대교를 지나 45번 국도를 타다 46번 국도로 들어선 후 청평검문소 앞에서 현리 방향의 37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현리 가기 전 대보리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수목원을 조금 지나면 크리스탈밸리 골프장이 있어, 골프장 안내 간판을 따라가도 된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대략 두시간 정도 걸린다. 031-585-4875. www.gapyeongwildgarden.co.kr
■"묵묵히 산천지킨 들풀처럼 우리도 수목원 잘 지켜야죠" /원장 김광수씨 부부
"그 때 여의도에 안 갔어야 했는데…. "
불과 6년전만 해도 김광수(50) '꽃무지 풀무지' 원장은 야생화와는 무관했던 사람이었다. 그도 자신이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건축자재 회사를 운영해오던 김 원장의 '인생반전' 계기는 남들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다름아니라, 6년 전 여의도에서 열린 야생화 전시회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곳에서 야생화를 보곤 "정신이 멍할 정도"로 푹 빠져 폐장하는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 원장은 곧장 야생화 관련 동호회에 가입했고, 이산 저산을 누비며 야생화와 인연을 쌓았다. 인연은 단순한 취미 이상을 넘어섰고, 급기야는 자신의 본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어렸을 때 충북의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 때 느꼈던 우리 야생화에 대한 추억이 마음깊이 자리잡고 있었나봐요. 전시회에서 야생화를 보니까, 뭔가 머리를 탁 치더라고요."
5년전 지금의 수목원 자리를 사들인 후 그동안 모은 돈과 노후 대비 자금 등을 모두 투자해 본격적으로 야생화 키우기에 나섰다. 아마추어가 수목원까지 차리기까지 시련은 또 오죽했을까. 전국 각지를 누비며 야생화를 찾았고, 또 야생화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쫓아가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식재는 힘들었고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부인 김혜옥(48)씨는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말렸을텐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원장은 "4년전쯤인가, 한번은 큰 홍수가 나서 그동안 심어놨던 야생화들이 모두 다 쓸려내려가 버린거예요. 그 때라도 그만뒀으면, 그나마 남은 돈이라도 많이 건졌을테죠"라며 웃었다. 하지만, "오기가 났다"고 한다. 꼭 성공시켜보겠다는, 꼭 야생화를 자신의 손으로 키워보겠다는.
부인도 김 원장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남편이 야생화에 팔려 있는 동안 회사에 다니며 살림을 꾸렸고, 올부터는 아예 수목원에 들어앉아 살림을 맡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우리 산천을 지켜온 야생화들, 그들의 생명력처럼 우리 수목원도 우리 땅을 지켜나갈겁니다." 부부가 함께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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