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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나주 월천리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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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나주 월천리 회화나무

입력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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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왕곡면 월천리에는 나무 둘레가 약 5m나 되는 큰 회화나무가 당산목(堂山木)으로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1630년경 경주 최씨 최효기라는 사람이 이곳에 처음 터를 잡고 마을 한복판에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니 나이가 대략 400살 정도 된 셈이다. 일부 굵은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나무줄기에 큰 구멍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도 마을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그런대로 기력을 유지하며 당산목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나주 시내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7㎞쯤 되는 곳에 있는 월천리 구래 마을에서는 그 해의 풍년 농사와 함께 자손들이 평안하고 번창하길 비는 당산제가 매년 정월 보름 이 회화나무 밑에서 정성스럽게 치러졌다.

일년 전에 제주(祭主)를 미리 정해 당산제를 지낼 때까지는 제주가 상가(喪家)에도 가지 않는 등 많은 까다로운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킨다. 뿐만 아니라 정월에는 마을에서 아이를 낳지 않아야 태어나는 아이나 마을에 화가 미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그 해 정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출산할 예정이면 외지에 나가서 아이를 낳고 3일 동안은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재앙을 미리 막고 마을의 안녕과 자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당산목의 대상이 되는 나무는 나무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당산목은 마을사람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핀 덕분에 오래 살고 거대한 모습을 갖게됐다. 구래마을의 당산목인 회화나무도 그런 깊은 뜻을 가진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최효기도 자손들 중에 훌륭한 학자 또는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인물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회화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옛날 중국 주 나라 때는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회화나무를 한그루씩 심었다고 하며, 그 관리가 모든 관직을 명예롭게 마치고 떠날 때도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의 북경 거리에는 이 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다.

이와 같은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관리들이 올바른 정사를 펴서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회화나무를 자기 주변에 심었다. 한 예로 조선 인조 25년(1647) 영의정에 오른 이용재라는 사람이 고향인 당진에 회화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는 지금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옛날에 재판관이 송사 문제를 처리할 때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는데 그것은 송사를 바르게 처리하겠다는 재판관의 깊은 다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수로 나무 높이가 35m, 직경은 6m까지도 자랄 수 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거목으로 자라는 나무 중의 하나로 현재 전국에 400년 이상 된 100여 그루가 천연 기념물 또는 노거수로 보호받고 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8월 초순에 황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많이 피는데, 이 시기는 양봉을 위한 밀원이 거의 없는 때라서 밀원수종으로서도 아주 적합한 나무다.

회화나무는 웅장하고 거대한 당산목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작은사진) 피는 모습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즉, 꽃이 수관의 위쪽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피게 되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 꽃이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 우리 선조들이 당산목을 잘 보살펴 온 것도 영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 헌 관 임업연구원 박사 hgchung2095@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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