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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정부의 자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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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정부의 자살골

입력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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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여름 김영삼 정부의 실세장관이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거액 비자금에 관한 이야기를 해 파란이 인 바 있다. 김영삼 정권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이 장관은 김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으로 언론은 전했다. 그러나 얼마 뒤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나서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했고 비자금은 사실로 밝혀졌다.문제는 어차피 과거청산으로 나갈 것을 김영삼 정부가 무엇 때문에 비자금 발언이 터져 나왔을 때 부인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타이밍이다. 즉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전, 노씨 구속을 위해서는 정지작업과 사회적 분위기 등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 같은 타이밍과 수순을 판단하지 않고 덜컥 비자금 사실을 흘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해 아마추어주의라는 비판이 많다. 그 중에서도 어떤 정책을 언제, 어떤 수순에 의해 발표해야 효과적인가라는, 타이밍의 정치에 대한 아마추어주의와 불감증은 보는 사람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한 마디로, 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살골을 넣지 못해 몸부림치는 서투른 수비수를 보는 느낌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386 음모론만 해도 그렇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비리의혹 사건이 386의 음모라는 주장이 일부의 반격처럼 참여정부를 분열시켜 좌초시키기 위한 수구언론의 음모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수록 386은 그런 시비거리를 제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동업자라고 부른 최측근 386은 정대철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새로운 여당의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함으로써 불붙은 음모론에 휘발유를 붓고 말았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최근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밝힌 언론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은 문제점도 있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문제는 이를 관철시키는 전략이다. 언론개혁을 관철시키려면 다수국민이 "수구언론이 너무 한다"고 느끼는 왜곡보도가 터져 나왔을 때 이를 치고 나가야 한다. 이는 고차원적인 전략적 사고를 하지 않더라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이 문제를 하필 양길승 청와대 제 1부속실장의 향응의혹이 언론의 1면을 장식하고 있는 순간에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격정적인 어조로 언론을 비판했다. 물론 이 같은 언론비판이 노 대통령이 평소 언론에 갖고 있던 울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효과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안이 언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감 때문이며 언론이 참여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기 때문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라고 선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개혁과 신당 움직임도 매한가지다.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덕분에 당선이 됐다. 또 "내 마음은 뻔한 것 아니냐"는 말로써 개혁신당에 대한 지지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실종됐고 신당논의는 사실상 민주당을 리모델링하는 '도로 민주당'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태가 이처럼 돼버린 것도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즉 대선승리의 기세를 몰아 초기에 이를 관철시켰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동력과 계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참여정부에서 개혁이 실종되고 노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하고 있는 것은 개혁이 수구세력에 의해 타살됐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타이밍의 정치에 대한 불감증 등으로 개혁이 자살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치적 타이밍에 대한 감을 찾아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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