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불신은 날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치유방법은 없겠습니까?"화합입니다. 화합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이화(理和)이니 서로 하나의 진리를 믿는 겁니다. 공통의 이념을 갖고 공동체 안에서 실천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화(事和)이니 모든 일에 있어 단합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사화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육화(六和)라 합니다."
―육화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첫째, 더불어 사는 신화동주(身和同住) 입니다. 민주주의도 이런 정신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이 정신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둘째, 입이 화합해 다툼이 없어야 하니 곧 구화무쟁(口和無諍) 입니다. 말은 자칫 갈등과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서로 뜻이 어울려 함께 즐기는 의화동열(意和同悅)입니다. 이런 세계가 극락입니다. 왕조시대 군주도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치세의 이상으로 삼았거든요. 세종대왕은 여민락(與民樂)이라는 악곡까지 짓지 않았습니까. 넷째, 규범을 지키는 계화동준(戒和同遵) 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과 질서, 예의범절을 말합니다. 사회의 화합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다섯째 견화동해(見和同解)와 여섯째 이화동균(利和同均)의 정신은 현대사회의 살벌함이나 부조리를 예방하는 도리가 될 겁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해 타협을 이끌어내는 견화동해, 이익을 나누어 갖는 이화동균의 사회가 될 때 갈등은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묵담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육화정신을 재구성해보았다. 육화정신은 부처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지만 묵담은 이를 세상사에 적용, 더불어 사는 지혜의 기쁨을 일깨워주었다. 50, 60년대 비구·대처 분규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로서는 승단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 유지의 생명은 화합에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법하다. 뜻을 같이 해 함께 가는 사람을 동행이라고 한다. 아무런 뒤얽힘이 없는, 마음과 마음이 합쳐진 따뜻한 사회― 묵담이 그리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계율의 준수와 실천이 곧 삶이었던 묵담성우(默潭聲祐·1896∼1981)는 율맥의 당간을 다시 세운 대율사이자 선지식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유년기를 보내던 묵담 스스로도 백양사 나들이가 출가의 길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겨우 11세 때의 일이다. 묵담은 처음에는 절집 풍경에 두려움을 느꼈다. 승려들이 어린아이만 보면 바랑에 넣어 잡아간다는 풍설을 믿었을 만큼 어린 나이였다. 그런 두려움은 사미니(어린 여승)의 경건한 축원모습에 사라지고 출가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발심의 순간이었다.
"딱한 일이다. 네가 승려가 되면 고기를 먹을 수가 없느니라." 나중에 묵담의 스승이 된 금해(錦海)는 머리를 깎으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시험해보았다. "지금 할머님을 모시고 줄포까지 가야 합니다. 줄포에는 바다가 있어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하니 이번에만 먹고 다음부터는 아니 먹겠습니다." 소년의 당돌한 대답이었다. 소년은 줄포에서 생선회를 실컷 먹었다. 그 이후로 고기와 생선을 독이든 음식처럼 여겼다. 묵담은 할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잿빛 염의를 걸친다. 해인사 해명학교 시절 묵담은 옷이 해져 구멍이 뚫리자 종이를 대고 꿰매 입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역경도 구도의 염원을 꺾지 못했다.
묵담은 스승의 영향을 받아 대은, 금담, 초의, 범해, 제산, 호은, 금해로 연결되는 백양사의 율맥을 계승한다. 계율은 승단의 헌법이다.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500계를 지키도록 돼 있다. 계율의 칼과 도끼가 아니고는 무섭게 자라나는 삼독의 악근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에서 악행을 없애는 것은 자리(自利)인 동시에 소승계법이라 하고 사회생활에서 선행을 하는 것은 이타(利他)인 동시에 대승계법이라 한다. 소승계법은 살생하지 않는 것이고 대승계법은 구생(救生), 즉 자비의 베품이다. 자리와 이타를 근본으로 삼아 해탈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집을 지음에 그 터를 먼저 단단하게 닦지 않는다면 모래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묵담에게 계율은 대도를 이루는 자양분이자 고통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인도하는 반야선이었다.
불가에선 계율을 사람의 입에 비유한다. 사람은 입으로 모든 음식을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한다. 입이 헐고 아파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면 건강을 해치고 마침내 생명까지 잃고 만다. 수행자에게 계율은 생명선이다. 계라는 입이 병들면 정(定·선정)과 혜(慧)라는 음식을 삼킬 수 없는 법이다. 묵담은 그래서 구업(口業)을 경계했다. 말로 짓는 죄가 구업이다.
"입은 생각할 줄 모르지만 마음은 능히 생각한다. 마음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입은 능히 말을 한다. 그러나 입은 항상 마음의 부림을 받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입이지만 속이는 것은 마음이다. 말에 믿음이 없으면 사람의 말이라 할 수 없다."
계율에 뿌리를 둔 육화정신과 일체중생이 부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는 화엄경의 성기(性起)사상은 묵담불교의 뼈와 살이다. 묵담은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의 차별이 없음(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을 강조한다. 사람은 저마다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알고 보지 못한다. 망상과 우매의 구름이 마음 속에 자라고 있는 부처의 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선사 도림은 대시인 백낙천에게 일렀다. "악을 짓지 말고 착한 일을 해라. 스스로 그 뜻을 밝힐 줄 알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백낙천은 이 말에 불법의 진리를 터득한다. 그리고 선적인 체험을 승화시킨 숱한 명시를 남겨 불교의 달인으로 불렸다. 불교가 실천의 종교임을 말해주는 일화다.
"만일 사람들이 나의 오고 가는 곳을 물으면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말하리라." 수열, 수진 등 문도에게 남긴 임종게다. 묵담은 좌탈입망(坐脫入亡)의 자세로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뜰앞 잣나무" 화두 참구 37세때 무심의 경지에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庭前柏樹子·정전백수자)."
―스님, 잣나무 따위의 대상을 들어 설명하지 마십시오."
"대상을 들어 설명한 바 없노라."
―그러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중국 당시대의 선사 조주와 수행승 사이에서 이뤄진 법거량이다. 수행승은 달마가 중국에 온 이유, 더 나아가 불법(佛法)과 깨달음의 의미를 물었다. 허나 조주의 대답은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했다. 조주가 주석하던 관음원에는 큰 잣나무가 있어 백림사(柏林寺)로 불렸는데 조주는 잣나무를 들어 대도의 길을 암시한 것이다. 당의 국사를 역임한 관산은 "잣나무의 화두에 도적의 낌새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망상 분별 집착을 송두리째 박탈하고 말겠다는 무서운 대도적의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대도적은 반야의 길로 인도하는 눈밝은 스승을 의미하는 메타포다.
묵담은 37세 되던 해 도봉산 망월사에서 '정전백수자'의 화두를 참구하다 반야의 빛을 찾았다. 망월사 뜰 앞의 노송을 보고 확철대오(廓徹大悟)의 법연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에 뇌성 울리니(靑天雷霆鳴·청천뇌정명)
천지에 큰 파도가 일렁이도다(天地大濤起·천지대도기)
하지만 나는 늘 한가롭고 편안하네(我卽常安閑·아즉상안한)
오로지 산꽃과 어울려 함께 웃노라(聊與山花笑·요여산화소)
청천과 천지는 불성(佛性)에 비유될 수 있다. 뇌성번개와 큰 파도도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의 본래면목을 바꿔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3, 4번째 연에선 무심의 경지가 한껏 드러난다. 무심은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의식의 모든 작용이 끊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마음에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경지를 무심의 마음이라 한다.
묵담은 아무 것도 구할 것이 없고 얻을 것도 없는 무소유의 마음을 얻었다. 바로 여여부동(如如不動)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여여부동은 금강경의 언어다. 삼라만상의 변치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이 여여부동이다.
● 연보
1896.3.8. 전남 담양 출신, 속성은 담양 국(鞠)씨
1907. 장성 백양사에서 출가,
법명은 성우, 법호는 묵담
1933. 망월사에서 대오(大悟)
1935. 백양사 주지
1975. 조계종에서 태고종으로 이적, 태고종 3, 4대 종정 역임
1981.1.3. 담양 용화사에서 세수 85, 법랍 74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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