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의 영화를 보고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의 영화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기 위해 작심하고 만든 이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배어 있다. 그의 두 편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이 다 그랬다. 그런데도 임상수는 자신이 대중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배짱이고 뻔뻔함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뻔뻔함에 넘어가주고 싶어진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임상수의 세 번째 영화 '바람난 가족'(사진)은 점잖은 분들이 보기엔 목불인견의 상황을 펼쳐놓는다. 남편도, 아내도, 시어머니도 다 바람이 난 가족의 이야기이며 그 와중에 시아버지는 불치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콩가루 집안이라고 욕하겠지만 '바람난 가족'은 느물거리며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라고 관객에게 묻는다. 변호사 남편과 전직 무용수 출신인 아내는 입양한 아들과 함께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들의 결혼생활을 묵인하고 있다. 바깥에서의 섹스는 그런 그들 가정에 윤활유를 치는 일종의 도피책이다. 물론 그것이 영원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도 안다. 감독 임상수는 대다수 대중문화가 퍼뜨리는 가족에의 환상을 이 영화에서 사정없이 망가뜨려 놓는다. 이창동의 영화가 그런 것처럼 임상수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계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계산된 허구의 세계다. 실제로 이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뜻밖에도 중반을 넘어서면 이 영화가 꽤 사실적인 실감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털끝만큼도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행복을 이상화시키지 않고 각개격파하는 접근태도 때문이다.
임상수의 연출 스타일은 불친절하다. 상황을 툭 던져놓고는 관객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느닷없다는 느낌을 주지만 결국 그런 스타일은 이 영화의 '싸가지 없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일관성이 있다. 남편과 아내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상황을 교차편집으로 부지런히 제시하는 이 영화는 부산스럽다. 각자 다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뭐 어때? 무심한 듯 보이지만 이 영화는 어마어마한 뇌관을 감추고 있다.
김성호의 데뷔작 '거울 속으로'는 한 편의 영화에 두 개의 영화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제목 그대로 거울이 나오는 숱한 장면들은 보는 사람의 얼을 빼놓을 만큼 매혹적이다. 거울이 불러일으키는 공포 효과의 변수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에 놀라 영원히 그 장면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거울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선 신인감독의 허둥지둥하는 연출이 드러난다. 무척 창의적이며 한편으로는 고루한 흔적이 골고루 퍼져 있지만 결말은 공포영화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관객에게 한 방 먹이는 참신함이 있다. 결말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는 상업영화의 규칙대로 '거울 속으로'는 그럭저럭 즐길만한 영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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