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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7> 하모니즘 미술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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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7> 하모니즘 미술 형성

입력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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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초기에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화상들이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었다. 미국인 대부분이 그렇지만 화랑 주인들도 영국계 작가를 우선시했고 동양계 작가는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모인 '에콜 드 파리'라면 국적이나 경력을 떠나 작품이 좋을 때는 훌륭한 작가로 평가되고 작품이 팔렸는데, 미국에서는 국적과 출신, 경력이 중요했다. 더욱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나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는 여러모로 제작 여건은 좋았다. 일단 국내 미술계의 갈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데다 새로 개발된 물감과 재료를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또 다행히 1970년대부터 한국 미술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그림이 불티나게 팔려 경제적으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건축 붐이 일어 집안을 장식할 그림의 수요가 크게 늘었던 것이다. 어떤 복부인은 전시장에 나온 그림을 모두 사가기도 했고, 산수화와 정물화는 입도선매가 예사였다. 나에게도 작품을 보내달라는 한국 화랑들의 편지가 끊이지 않고 왔다.

몇몇 작품을 한국으로 보내면서도 미국에서는 상업화랑과 거래하지 않고 비영리 초대전에만 응했다. 파리에서 폭리를 취하려는 화랑에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펜실베이니아대 주최의 정기전에 계속 출품했고, 69년에는 위스컨신 주의 사우스뱅크 화랑, 70년 필라델피아의 우드미어 화랑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었다. 우드미어 화랑 개인전 개막식 때는 마침 동남아 순회 공연을 하고 있던 큰 딸 용자를 오라고 해서 우리 전통춤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마련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내 그림이 꽃이라면 딸의 춤은 나비가 꽃을 찾아 다니는 듯한 분위기를 빚었다. 전시는 한 달 동안 계속됐고 연일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우드미어 화랑 개인전 이후 나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73년 진켄타운 아트 페스티벌(연례 문화행사)에 1,000호짜리 대작 '음과 양'을 완성해 출품, 1등상을 받았다.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의 하나인 음과 양을 표현한 이 작품을 신호탄으로 하모니즘 미술이 시작됐다. 그 때는 추상의 유행이 한 물 가고 포토리얼리즘의 전성기였다. 얼마 후 나는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 학생들의 정기 전람회가 있어서 디스플레이를 도와 주려고 전시장에 갔다. 여기서 학생들이 제멋대로 벽에다 기대 놓은 출품작 가운데 우연히 추상과 구상 작품이 나란히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과거에 그려 놓았던 추상과 구상 작품들이 한 점 한 점 내 눈앞에 생생하게 떠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어느 작품과 어느 작품을 같이 붙여 놓으면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작품들을 찾아내어 서로 조화가 되는지를 맞추어 보았다. 그 때는 완전한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하나의 그림을 그릴 때 눈에 보이는 모델은 구상 화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모델의 정신세계는 추상 화면에 그려 놓아 다시 둘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것을 나는 조형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추상과 구상 작품을 별도 화면에 그려 조합한 작품이 바로 '염(念)'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학교로 가져가 학생들을 모아 놓고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며 반응을 살폈다. 모든 학생들이 붙였을 때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시도에 대해서도 기성 작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장난도 아니고 그게 무슨 작품이냐는 식이었다. 심지어 조형주의 작품전에 내놓은 '오(悟)'라는 작품의 사진을 펜실베이니아대 화집에 싣기 위해 보냈는데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구상 부분은 빼고 추상 부분만 넣었다. 나는 학교측에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따져보았자 이해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후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갤러리에서 열린 교수 작품전에 그 그림을 내놓자 교수들은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화제가 됐다. 전에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이 화실로 찾아와 인사를 하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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