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지럽고 정치는 시끄러운 듯하지만 민심이 냉담한 표류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20%대로 나타났다거나,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지지도 역시 20% 안팎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이런 현상을 말해준다. 지지 정당을 짚지 못하는 응답들이 정치불신이 깊을 때처럼 다시 늘어나는 것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실업과 경제난 노사분쟁 등의 민생문제에서 정부나 정치권의 역할이나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집중하고 우선시해야 할 의제설정 기능이 엉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민생의 문제는 정책의 문제이지만 정책고민과 논쟁이 정부와 정당 사이에 진지하게 진행되는 모습은 없다. 지난 대선 때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경쟁이 성시를 이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정책들이 실행돼야 할 신정부 하에서 다른 일들이 더 시끄러운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다. 정책의 시대가 올 것 같은 분위기에 공약과 정책검증에 언론도 경쟁하고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왜 그럴까. 선거 이후 주목을 더 끈 일들은 대부분이 정치사건들이었다. 그리고 몇 달간 계속된 여론잡기의 경쟁에서 민심을 끌어들인 쪽은 아무도 없다.
■ 얼마 전 한나라당이 정치일변도의 투쟁방식을 접고, 대신 다수당의 힘을 정책과 예산투쟁으로 돌리겠다는 발상을 내놓은 것도 이런 정세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통령과 여당을 상대로 아무리 깎아내리기의 싸움을 벌여봐야 당의 지지를 끌어당기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현실을 확인한 고육책일 것이다. 그런 자세를 얼마나 충실히 견지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정책과 민생에 집중해야 할 정치권의 일은 한나라당만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가 선수를 치고 기선을 잡아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영역이 정책분야이다. 방치된 영역을 야당이 차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원내의석이 없는 민주노동당이 '원외 국정감사'를 추진한다는 작은 얘기도 이런 상황 탓에 눈에 띈다. 정부에 대한 자료요구 방식을 통해 정책감사와 대안 제시를 시도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노동분야 최대이슈인 정리해고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을 주장하는 한국사회민주당 장기표 대표의 목소리도 들을 만하다. 사회민주주의를 걸고 창당작업에 들어가면서 그는 정리해고는 반대해야 할 문제가 아니며 정보화사회로 가는 역사적 현상으로 통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생명보험 교육보험 등 연간 개인보장으로 들어가는 돈이 완벽한 사회보장 실시에 들 돈 50조원의 두 배가 넘으니 재원마련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심을 살피는 눈치도 볼 줄 알아야 그것이 정치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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