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웨스트 밴쿠버에서 유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래 밴쿠버를 포함하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한국인 유학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유학생이 많은 보드웰 국제고(Bodwell International High School) 교무주임과 캐나다 명문 세인트조지 사립고(St. George's School)의 입학 담당관, 그리고 웨스트 밴쿠버 교육청 이사를 만나 한국 조기유학생들의 현 위치와 문제점을 들어봤다. 세 사람은 속한 학교와 위치에 따라 다소 상이한 견해를 내보였으나 유학 생활에 있어 "부모의 관심과 확실한 목표 설정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보드웰 국제고 윤난영 교무주임
밴쿠버 북부에 위치한 보드웰 국제고 윤난영(35) 교무주임은 '목적 없는 조기유학'의 폐해를 경고했다. 보드웰 국제고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학교 분류에 따라 '캐나다 학생보다 외국인 학생이 많은' 제4그룹에 속하는 사립고다.
'보드웰의 발전에 한국이 지대한 도움을 줬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학생수가 많은 이 학교에서 한국 유학생이 일으키는 문제는 대부분 학업보다는 생활 방식에서 일어난다. 윤 주임은 "한국에서 생활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행동하거나 자기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아 홈스테이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현지인들 사이에 '한국 남학생은 받지 말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경전은 보통 그릇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보내온 김치를 먹는 일 등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다. 융통성 있게 넘어가는 여학생들과 달리 '한창 나이'인 남학생들은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물을 부수는 등 반항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폭력을 가장 엄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 퇴학 처리될 수도 있으며 한번 퇴학을 당하면 그 기록이 계속 남아 다른 학교에 입학하기도 어려워 진다.
윤 주임은 "유학 전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스스로 상을 치우거나 빨래를 하는 등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적으로 생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며 "여건이 된다면 아이 혼자 보내기보다는 반년 정도 부모 중 1명이 따라올 것"을 권했다. 부모가 따라오면 한국어를 자꾸 사용하게 돼 영어가 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서 윤 주임은 "홈스테이 가정에 혼자 떨어져 있다고 영어를 더 빨리 배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윤 주임은 "한국에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학생의 마지막 대안으로 유학을 보내면 문제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절대 보내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한 컴퓨터 TV 자가용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주지 말 것을 권했다.
세인트조지 사립고 윌리엄 맥클리킨 입학담당관
캐나다 전국 고교 평가에서 수년간 1위를 놓치지 않으며 100%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남학교 세인트조지 사립고에는 총 12명의 유학생이 있으며 이 중 6명이 한국 학생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600점대의 TOEFL과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 그리고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심층 인터뷰가 필요하며 별도의 ESL(제2외국어로서의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 과정이 없기 때문에 상당 수준의 영어 실력도 필수다.
윌리엄 맥클리킨(50) 입학담당관은 유학 전 부모의 사전조사와 학교 방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클리킨 담당관은 "한국 부모는 영어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유학원 등에 모든 것을 일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학생의 능력과 필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부모인 만큼 아이를 보내기 전에 직접 학교를 찾아 교사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 입장에서도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 본 학부모와 추후에도 이메일이나 팩스 등을 통해 아이에 관해 솔직하고 성의 있게 논의할 수 있다는 것.
맥클리킨 담당관은 유학을 보내기 전에 각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학 캠프에 참가하는 것도 학교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올해는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쉬긴 했지만 세인트 조지도 매년 4∼17세를 대상으로 여학생도 참가할 수 있는 여름 캠프를 개최한다.
웨스트 밴쿠버 교육청 로드 매치슨 이사
"부모와 학생 모두 유학의 목표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목표가 오직 영어라면 영어학원에 보내면 되겠지요."
밴쿠버 내에서도 가장 먼저 유학생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외국 학생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철저하게 구축돼 있는 웨스트 밴쿠버. 이곳 교육청에서 유학생 관련 업무를 약 10년간 총괄하고 있는 로드 매치슨(45) 이사는 목표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유학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매치슨 이사는 "웨스트 밴쿠버 공립학교는 유학생을 위해 전문가들이 만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두고 있지만 뜻이 없는 학생까지 억지로 공부시키려고 힘쓰지는 않는다"며 "잘못하는 학생은 잘하도록 끝까지 도와주지만 노력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학생은 프로그램에서 퇴출시킨다"고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한국 학생끼리 몰려다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다양한 클럽 활동은 큰 도움이 된다. 매치슨 이사는 캐나다 학생과 자연스럽게 사귀기 위해 악기 한가지 정도를 배워오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밴쿠버 일대의 학생 밴드는 캐나다 내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을 뿐 아니라 '영어가 그다지 필요치 않은' 활동을 통해 현지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밴쿠버=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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