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어린이 만화영화 시간대를 강타했던 '세일러문'에 한 여성단체가 방영 금지 압력을 넣었던 적이 있다. 이유는 선정성. 재미있는 건 아이들보다 성인 남자들이 이 만화영화의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는 비공식 통계자료다. 모든 건 그 특별한 의상 때문이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고 그녀들이 소리칠 때 남성의 눈빛은 어느새 '세라' 복의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세일러 문'에 대한 여성단체의 박해는 판타지를 잠재워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하려는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런 이유라면 최근 개봉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반기는 18세 이상 성인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17세 여고생 하루의 교복 입은 모습! '세일러문'의 그녀들이 한껏 양식화되고 환상 터치로 덧씌워졌다면, '고양이의 보은'은 현실 그대로이며 오히려 그런 자연스러움이 더욱 더 큰 자극을 주는 법이다.
어떤 물건이나 특정한 신체 부위에 성적 감흥을 일으키는 페티쉬 취향을,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놓고 즐겼다간 변태 취급 당하기 딱 좋다. 하지만 우린 누구나 한두 가지의 페티쉬를 가지고 있으며 감성이 발달하고 섬세한 사람일수록 좀더 고등한 페티쉬를 즐기는 법이다. 여기서 세라복(혹은 교복)에 대한 야릇한 애호는 일반적인 성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으며 간호사 옷이나 군복 등에 묘한 감흥을 느끼는 '유니폼 페티쉬'의 일종이기도 하다.
일본영화가 '세라복 입은 소녀'라는 가공할 캐릭터를 개발했다면 교복 자율화 시기를 벗어나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한 90년대의 한국영화 또한 몇 편의 '교복 시네마'를 탄생시켰다. 공중파에 '학교' 시리즈가 있었다면 영화로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교복의 가장 큰 매력은, 통일성 속에 존재하는 은밀한 노출성이다. 게다가 그 옷을 입는 연령대의 아이들이 한참 성장기이며 어른의 몸을 갖춰간다는 사실은 교복의 성적 의미를 더욱 심화시킨다. 농구 한 게임 뛰고 수돗가에서 찬물에 머리를 처박은 남자 아이의 적당히 풀어헤친 교복 셔츠만큼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옷이 있을까? 소나기 쏟아지는 날, 우산은 썼지만 비에 젖어 다리에 달라붙은 교복 치마와 하얀 종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전한다. 여기서 카메라의 음험한(?) 시선은 가장 자극적이지만 은밀한 방식으로 그 느낌을 카메라에 담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복에 대한 가장 심오한 영화는 영어권에서 나왔다.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엑조티카' 클럽 장면. 세라복을 입은 여자는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에 맞춰 묘한 춤을 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교복 페티쉬스트들에게 엄중한 한 마디를 던진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말 것! 어쩌면 이 메시지는, 이 땅에서 원조교제를 꿈꾸는 아저씨들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김형석 ·월간 스크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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