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느낌이 다르다. "식민통치의 본질적 제약과 폐해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 조선인들은 상당히 잘 살았다. 그들은 조선조 통치 아래서보다 훨씬 낫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 조건들만 따진다면 같은 시기의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실질적으로 못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이런 말이 일본 정치지도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곧바로 '망언'이 되고,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은 연일 반일 시위가 물결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식인이 개인적 고뇌를 담아 한 말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강한 거부감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근거에서 이런 말을 했을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발언의 주인공이 1980년대 말의 베스트셀러 '비명을 찾아서'의 작가 복거일씨라면 더욱 그럴 법하다.
복씨가 쓴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들린아침 발행)는 그런 궁금증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많은 실증적 자료를 들어가며 일제 식민통치를 재평가, 통념과는 전혀 다른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한 식민지 조선은 조선 왕조 시대의 피폐한 삶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는 논지다.
이어 그는 중심 주제인 친일파 문제와 관련, 포괄적인 범주 규정에서 벗어나 보다 엄밀한 기준, 즉 불법성과 자발성, 조선인의 삶에 미친 결과적 위해성 등을 잣대로 보다 엄밀하게 범주를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소극적 친일파는 이제 역사의 속박에서 풀어주자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일본에 대한 한과 열등감, 민족주의적 편향 등 잠재의식의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대단히 도발적인 주장이지만 일련의 저작에서 그가 보인 진지한 태도를 기억한다면 특별히 발상의 순수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또 최근 우리 지식사회에서 이런 문제 제기가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일제 식민사관의 안티테제로 확고한 지위를 누려 온 민족주의 사학이 도마에 오르고, 허구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80년대 후반 등장했다가 학계와 대중의 뭇매를 맞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기초조건이 식민지 조선에서 마련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평가 작업도 활발하다.
이런 흐름은 기억의 쇠퇴를 틈탄 '음험한 기도'일 수도, 주관적 경험에 빠져 객관적 전체상을 외면한 오류가 시정되는 것일 수도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시대에 따라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냐는 사회적 요구가 변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체험과 추체험을 끝없이 되새김질해 증오와 반감의 에너지를 잘 살아보자는 각오로 이끌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면 그만이었을 뿐 국망(國亡)의 길을 걷게 된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는 소홀했다. 그런 세월이 가고 있다. 국제자본의 음모라고 몰아 붙일 수만 없었던 'IMF 위기'를 거치며 싹튼 자기 반성의 기운, '민족경제론'의 후퇴가 계기였다.
사흘 뒤면 58주년 광복절이다. 6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의 역사 이해가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복씨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지식사회가 그냥 무시하거나, 침묵하기보다 열린 가슴으로 논쟁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날로 흐려져 가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황 영 식 문화부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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