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아름답지만 배타적이다. 자신이 열정을 쏟는 일에 반하는 언행에 과격하게 대응한다. 노무현 정권은 열정의 축복으로 태어난 정권이지만 동시에 열정의 재앙에 직면해 있다. 열정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분열은 지난 대선에서 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새 집을 짓기 위해 헌 집을 철거하는 데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를 살려가면서 철거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 때려부수는 방법이 있다. 노 대통령은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새 집을 지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어디에서 살 것인가? 노 대통령은 그 계산도 하지 않았다. '미래지향적'이라는 강박에 압도돼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때려 부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헌 집이 꼭 민주당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용인술 또는 대인관계마저도 그런 식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 주변엔 헌 집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몰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 대통령처럼 스스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와해시키려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애를 쓴 지도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건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자기 무덤 파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언을 했다. 그러나 우이독경(牛耳讀經)이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노 대통령의 고집 때문일까? 그게 이유의 전부인 것 같지는 않다.
잠시 인터넷에 들어가보시라. '재활용파'와 '다 때려부수기파' 사이의 갈등이 치열하다. 나는 '재활용파'로서 그 주장을 담은 책까지 냈다. '다 때려부수기파'의 공격이 빗발쳤다. 이론 논쟁이 아니다. 나의 양심과 양식을 문제삼는 인신공격이다.
그러나 귀담아 들을 만한 비판도 있다. 내가 총선 승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총선이야 어차피 '정치자영업자들 집안잔치'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총선에서 패배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총선 승리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남은 4년여간 국정운영을 염려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암(癌)이라 할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30년 앞을 내다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내 의문에 대한 답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노 대통령도 10석이라도 좋으니 전국정당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한 걸로 널리 보도되었다. '다 때려부수기파'의 수가 많은데다 그들의 열정이 워낙 뜨거워 노 대통령이 그 노선에서 이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노선이 '열정의 재앙'이라는 나의 판단이 옳은가 그른가는 시간이 입증해줄 것이다. 새 집을 짓는 데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의 순수성과 진정성도 머지 않아 밝혀질 것이다.
지금 나같은 사람이 당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제2의 분열이 '재활용파'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노 정권의 자해(自害) 노선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노무현 죽이기' 만큼은 왕성하게 비판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에 대한 공격도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의 탓이 더 큰 데, 왜 엉뚱한 쪽을 문제삼느냐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분열의 시대인가? 아니면 열정의 축복에 대해 치러야 할 비용을 지불하는 과도기적 진통인가?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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