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임금 인상안을 담은 현대자동차 노사협상 타결에 대해 '대기업 노조의 자기 몫 챙기기'라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현대차 노조에서는 "지난해 1조4,443억원의 순익이 난 만큼 노동자와 이익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하지만 지난해 1조엔(10조원) 이상의 순익을 올린 일본 도요타의 경우 노사 합의로 올 임금을 동결했다.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아 생활비 상승요인이 없는데다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설투자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5월 임금 협상이 끝난 미쓰비시 중공업 노사도 지난해 회사의 이익은 많이 났지만,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의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감안해 보너스만 조금 올리는 선에서 협상이 끝났다.
이처럼 선진 대기업의 경우 임금 인상이 국가 경제 등에 미칠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고 노사가 협상을 하는 것이 원칙. '하청업체에 부담을 주더라도 우리만 더 받으면 된다'는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에서는 탈피한 지 오래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거대한 조직을 거느린 대기업 노조라고 해도 힘의 논리를 앞세워 막무가내로 파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독일은 산별노조 규약에 따라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파업에 들어간다.
영국에서는 파업 찬반투표를 아예 우편으로만 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파업이 일부 강경파의 선전선동 등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되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안전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올해 파업에 돌입하면서 얻은 찬성률은 노조 설립 이후 가장 낮은 54.8%.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과반수 찬성만 얻으면 파업을 할 수 있는 법 규정에 따라 42일간의 파업을 강행, 후유증을 낳았다.
단국대 경제학과 박동운 교수는 "독일, 일본 등에서도 한때 대기업 노조가 전투적 노동운동을 이끌었지만, 기업 경쟁력 약화,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면서 노선과 투쟁방법 등에서 전환을 모색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뒤늦게 방향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운동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SK(주) 김태진 상무는 "사회 전 분야에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지만, 대기업 노조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현대차 임단협 타결 이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과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례 등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 관계법과 제도의 선진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에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노조전임자 축소·폐지 및 노조전임자에 대한 노조의 임금부담 쟁의행위 찬반 투표시 우편투표 허용 및 의결정족수 3분의 2로 상향조정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 관계자는 "대기업 노조가 막강한 힘을 갔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차적인 지위"라며 "그동안 불균형했던 노사관계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투쟁성이 중요시되고 임금 인상 위주의 투쟁에만 치중했던 한국의 대기업 노조운동은 한국적 특수성의 산물"이라면서 "노사 모두 새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측과 함께 북미지역 최대 노동조합인 UAW를 방문한 뒤 "노사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가치창조형 노사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 LG전자 장석춘 노조위원장의 말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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