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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제대로 쓰면 "요술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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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제대로 쓰면 "요술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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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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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기업에 다니는 골프광인 K부장은 이번 주말을 벼르고 있다. 장타를 자랑하던 그가 라이벌인 L교수에게 매번 불과 몇 m 차이로 뒤져 자존심이 상했는데, 이번만큼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비거리를 5∼10% 늘려주는 '방사선 골프공'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골프공에 방사선을 쬐면 골프공 안에 함유된 수많은 탄소들이 서로 연결돼 탄성률이 올라가면서 딤플(골프공 표면의 작은 홈)이 받는 공기 저항이 줄어 일반 공보다 5∼10% 더 멀리 날아간다.흔히 '죽음의 광선'으로 불리는 방사선이지만 잘 쓰면 '요술광선'이 되는 게 바로 방사선이다. 위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여부를 놓고 국가적 논란이 일고 있지만 방사선 기술(RT·Radiation Technology)이 배제된 생활은 이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방사선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방사선이란 방사선은 원자핵이 분열하거나 융합할 때 나오는 높은 에너지의 빛. 방사선에는 동위원소에서 방출되는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과 기계적으로 발생하는 X선, 전자 가속기에서 나오는 전자선, 원자로에서 만들 수 있는 중성자선 등이 있다. 방사선이 유기물을 투과하면 전자가 발생되는 이온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세포 내 핵산(DNA)의 화학적 결합이 끊어진다. 방사선을 많이 쬐게 되면 나중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암이 생기거나, 세포가 일찍 죽게 된다.

그러나 방사선을 아주 적게 쬐면 생체 내의 세포 중 건강하지 못한 세포를 제거하고 비교적 건강한 세포만 선택적으로 살아 남는다. 이를 이용해 암 치료와 식품 살균 처리 뿐만 아니라 골프, 지뢰 탐지, 인공 관절, 범죄 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방사선은 '죽음의 광선'이 아니라 '요술 광선'으로 불리고 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방사선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방사선 기술과 관련한 세계시장 규모가 2010년에는 1조1,000억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 정부도 477억원을 투입해 전북 정읍시에 방사선 특성을 연구하고 이용분야 기술을 개발하는 13만평 규모의 첨단방사선이용연구센터를 2005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어디에 쓰이나 의료분야에서는 암 치료에 주로 쓰이고 있다. 생체세포에 방사선을 쬐면 세포의 핵산이 손상되고 이로 인해 세포가 죽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암세포는 일반세포보다 세포분열 속도가 빠르고 세포 내 핵산의 양이 많기 때문에 방사선에 의한 손상이 일반세포보다 더 크다. 이런 차이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한 감마나이프 방사선수술이 있다. 실제로는 수술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수술과 같은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발트-60이라는 방사선동위원소 201개를 하나의 중심점을 향하도록 배열하고 이 중심점에 치료 대상이 되는 병 부위를 정확히 놓은 뒤 감마 방사선을 쪼임으로써 뇌하수체 종양,뇌수막종, 악성 뇌종양, 뇌전이암 등을 치료하는 것이다.

방사선 가운데 감마선은 질소 원자핵과 만나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 폭약은 대부분 질소화합물이기 때문에 이 성질을 이용해 폭탄을 찾아낸다. 방사선은 범죄수사에도 널리 사용된다. 1980년대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 범죄 현장에 남은 체모를 통해 범인을 찾아내는데 공헌한 것도 바로 방사선. 머리카락이나 체모에 방사선을 쬐면 개인에 따라 원소 성분이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 체모 분석은 이제 DNA검사법에 주로 의존하지만 페인트, 섬유, 흙 알갱이 등의 분석은 여전히 방사선을 많이 이용한다.

또한 방사선이 없다면 자동차나 비행기 등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자동차 엔진 주위에 있는 전선들은 100도를 오르내리는 엔진 열기를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전선에 방사선을 쬐면 140도의 열에도 끄떡없다.

이밖에 방사선을 식품에 쬐 식중독을 일으키는 식품 내 병원성 미생물을 제거한다. 미국에서는 학교 급식에 방사선 처리를 한 육류를 공급할 정도다. 또한 방사선으로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없앨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변명우 박사팀은 최근 방사선을 달걀이나 소시지 등에 쪼여 식품의 맛이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알레르기 원인 물질을 없애는데 성공했다.

변 박사는 "방사선을 쬐는 기술은 효소 처리, 유전자 조작법 등 기존 알레르기 물질 제거법에 비해 간편하고 식품 성분에도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한국원자력연구소 변명우 책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주운 선임연구원, 성균관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안용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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