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평화를 지키는 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평화를 지키는 길

입력
2003.08.11 00:00
0 0

여름 휴가로 한산한 워싱턴을 찾았다. 9·11 테러 공격을 당했던 국방부 건물을 돌아보며 당시 백악관이 무사했던 것, 그리고 미군 수뇌부가 화를 면한 것은 순전히 요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 당한 바로 그 건물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 지휘부가 미국의 안전도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방위력을 가진 미국이 이처럼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끼는데 한국은 어떤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증오로 무장하고 자살 공격을 신성시하는 광적인 집단들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은 과연 안전한가?오랜 역사를 통해 자주 국제적 전쟁터가 되었던 한반도는 지난 50년간 냉전의 세력 균형 속에서 그나마 평화를 유지했다. 이 평화를 토대로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 동안 평화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는 평화를 지혜롭게 지켜내야 할 가치로 보기 보다는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말끝마다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순진하지만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소리질러서 지켜지는 게 평화라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가.

평화는 인류가 희구해온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지만 그 자체가 항상 최고의 목표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점령군과 억압자는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점령당한 사람이나 억압당하는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평화보다 정의로운 싸움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테러집단들도 자신들이 정의로운 싸움을 한다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일제를 향한 전쟁을 선포하고 싸웠다. 다만 그들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를 행하지는 않았다.

물론 점령자나 억압자들만이 평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여 자신의 나라가 행하는 부당한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반전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내에 반전운동을 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침략 야욕을 가진 독재자들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지하여 결과적으로 침략자들의 간덩이를 키워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자초하였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는 길은 단순하지가 않다. 보수주의자가 전쟁을 애호하고 진보주의자가 평화를 사랑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고, 강경파가 전쟁을 일으키고 온건파가 전쟁을 막는다는 공식도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병적인 전쟁광이 아닌 바에야 누구나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평화애호가라고 말로 떠드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인명과 재산 그리고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전쟁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들만이 역설적으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다.

세계에는 서로 다른 가치체계와 풍속을 지닌 온갖 종족과 집단들이 함께 산다. 그러나 우리의 평화를 파괴하는 게 목표인 세력과는 함께 살 수 없다. 부단히 이웃의 평화를 위협할 수 밖에 없는 내부 구조를 가진 세력과도 함께 살 수 없다. 이들이 야기하는 위협은 어떤 형태로든 제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켜야 될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들 간의 연대가 중요하다.

냉전이 종식된 뒤 국제 질서는 가변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20세기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주요한 변화의 에너지를 공급하였다. 21세기에는 어떤 가치체계가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동력이 될 것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변화는 일어난다. 국경이 바뀌고 권력이 이동한다. 이 큰 틀 속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 보고 설계해야 한다.

채 수 찬 미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