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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대북사업 새 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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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대북사업 새 틀이 필요하다

입력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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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경제사업의 상징이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이유는 대북경협사업의 부진과 대북 비밀송금 수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북한출신 아버지의 대를 이은 사업이자 민족의 평화사업으로 일컬어지는 대북경협과 관련된 것이어서 우리 사회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현대는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며 남북경협의 대표기업으로 등장했다. 당시 현대는 6년3개월에 걸쳐 9억4,2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키로 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독점권을 확보했다고 발표하였다. 현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개발에 관해서도 북한과 합의하였다.

현대와 남북한 당국이 공동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남북경협사업은 이들 3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여 시작될 수 있었다. 현대는 북한사업에 대한 선점, 남한정부는 남북평화정착, 북한은 경제적 이득이 각각의 일차적 목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이 목표가 충족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연간 50만명 이상으로 내다봤던 금강산 관광객 수가 예상보다 저조해져 위기가 왔다. 심지어 2001년에는 5만명 이하로 감소하여 금강산 관광사업이 존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급기야 국영기업인 관광공사가 참여하고 교류협력기금을 투입하여 정부보조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적자를 막지 못했고 현대는 올들어 월 20억∼30억원의 적자를 감수해왔다.

현대는 육로관광이 본격화할 수 있는 올 12월까지만 정부가 적자보전 지원조치를 해주면 독자적인 경영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에 대한 호응 감소는 단지 비용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단조로운 관광상품, 통제되는 행동, 설비의 부족, 정치적 민감성 등이 중요한 제약요인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다양한 시설 허용, 자유로운 활동 허용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북한의 적극적 협력 없이는 금강산 사업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특검수사를 통해 현대가 경협사업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정부간 비밀송금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대북경협에서 정경분리원칙을 내세웠던 정부의 핵심인물들이 기업을 정치적인 일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둘째, 정경협력으로 인해 야기된 기업의 경영위기에 대해서도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 북한 역시 대북경협이 난항에 처해도 강건너 불처럼 내버려두어 왔다는 점이다.

대북경협사업은 아직 시장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시장기능에만 의존할 수 없고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정 회장 자살사건은 기업과 정부간의 협력에도 분명한 규칙이 존재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북한은 사업의 수혜자일 뿐 아니라 파트너임이 분명하므로 그들에게 성실한 협력을 촉구해야 한다.

현대는 경영판단의 실수, 모호한 형태의 정경협력, 그리고 북한의 태업으로 인해 좌절을 겪었고 아까운 경영자를 잃었다. 앞으로 유사한 불행이 초래되지 않고 남북경협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려면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해 명확한 규칙을 도입하고 남북당국이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그리고 이 틀에 입각하여 지금까지 현대가 담당해온 역할 중 정부가 담당할 것과 기업이 담당할 부분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담당해야 할 역할도 분명히 규정하고 적극적 동참을 요구하여야 한다. 그저 문만 열어주고 입산료만 받는 것이 아닌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남북경협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소모와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윤 덕 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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