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지음 중앙M& B 발행·9,000원폴 발레리(1871∼1945)는 남프랑스 세트의 지중해 언덕에 누워 있다. 묘비명에 그의 시 '해변의 묘지'가 새겨져 있다.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 거센 바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 닫고 물결은 산산이 부서지며 바위로부터 용솟음친다.' 죽음의 자리에 써넣은 시가 '살아야겠다!'라니. 위대한 시인은 완벽한 죽음을 통해서만 생성되는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인생과 문학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소설가 함정임(40)씨가 묘지 기행의 첫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함정임씨의 '그리고…나는 베네치아로 갔다'는 특별한 여행의 기록이다. 그는 1년에 한두 차례씩 여행을 떠남으로써 삶을 충전하는 작가이다. 프랑스 파리 기행서 '인생의 사용'과 함께 나온 이 책은 그의 여행길 중에서도 묘지 순례만을 모은 것이다. 유럽의 그 어느 매혹적인 공간보다 묘지에 끌리곤 했다는 그다.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서 삶을 잉태하는 죽음을 보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첫눈에 마음을 점령해 버린 사랑의 위력을, 지독하게 쓰라린 사랑의 상처를 만난다. 묘지라는 죽음의 흔적이 사랑과 동일어인 곳. 그래서 토마스 만(1875∼1955)이 '베네치아에서 죽다'를 쓴 것은 자연스러웠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의 묘지는 문학의 영토다. 살아 생전 기이한 계약 동거인이었다가 죽어서 꼼짝없이 하나의 묘석 아래 영원히 묶여 있게 된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살아서 까마귀 불러 쪼아먹히고 싶다' 고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죽어서 남들의 눈물을 빌게'('즐거운 주검') 된 세기말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글쓰기가 얼마나 관능적인 것인지를 보여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가 잠들어 있다.
폴 엘뤼아르, 새뮤얼 베케트,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 이 세상 밖의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작가는 죽음으로 새로 태어나는 싱싱한 삶을, 죽음과 맞서는 사랑의 불온한 공기를, 죽음의 관조에서 오는 평온을 얻는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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