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지음 들린아침 발행·2만원일제시대 친일행위와 친일파를 처벌하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유명 작가 복거일씨가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신간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 그는 "일제의 식민통치는 매우 가혹했기 때문에 친일은 불가피했으며 따라서 현재의 논리로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친일파 단죄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우리 체제의 정당성을 해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식민통치의 본질적 제약과 폐해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상당히 잘 살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본 극우 세력의 망언처럼 들리는 이런 발언이 가득해 적지 않은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책의 무게 중심은 일제 식민통치의 재평가에 있다. 그는 전체 534쪽의 지면 중 3분의 1을 할애, 일제시대 인구 추세·무역액·공업생산량 등 계량적 자료를 통해 식민지 경험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인구 증가다. 책은 "식민지 시기 조선인 인구는 1910년의 13,128,780명에서 1942년의 25.525,409명으로 94.4% 늘었다" 면서 이로 보아 "당시 조선인들은 조선시대보다 훨씬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물질적 조건만 따진다면 같은 시기의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실질적으로 못할 것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친일 문제와 관련, 그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은 본질적으로 '친체제'였다고 강조하면서, 반드시 처벌해야 할 친일 행위는 '불법적이고 자발적이고 조선인들에게 해로웠을' 행위, 즉 독립운동가의 고문이나 여성들을 군대위안부로 동원한 행위 정도에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군에 지원하라고 부추긴 일은, "조선인이 일본제국의 시민이던 당시로선 병역 의무를 이행하라는 애국적이고 합법적인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친일파 처단의 타당성과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으로 그는 친일파 단죄의 도덕적 권위도 부정한다.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압력에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치기를 거부했던 언론인이 그리 많지 않은 우리 세대가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일종의 '공범론'이다.
자신의 주장이 일으킬 파장을 잘 알면서도 이런 책을 쓴 데 대해 그는 "일본에 대한 한과 열등감, 민족주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일본과 일제시대를 객관적으로 보자고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서적 반감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객관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반박에 부닥치고 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제시대 인구증가는 근대기의 일반적 현상이지, 일제가 식민통치를 잘 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조선이 붕괴하면서 인구통계 시스템도 무너졌기 때문에, 1934년 국세 조사 이전의 인구통계는 믿을 수 없는 부정확한 자료라는 게 학계의 통설"이라고 설명하면서 복씨가 제시한 1910년 대비 94.4% 인구증가율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일제시대가 '살만한 지옥'이었다는 복씨의 주장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며, 친일의 불가피성이나 친일파 단죄의 공범론을 강조하는 것은 진짜 단죄해야 할 친일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친일파로 규탄받는) 죽은 자들을 변호하기에 앞서, 그들의 사죄와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의 독후감은 이 책이 객관을 가장한 위험한 궤변에 가깝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 '사회적 악한'을 변호하는 일에는 도덕적 용기와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자신의 주장과 같은) "사회적 소수 의견도 옹호돼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식민 지배의 어두운 유산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남아있음을 볼 때, 그가 늘어놓는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는 항일 선열 뿐 아니라 '산 자에 대한 모욕'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