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4세의 조선 청년 손기정이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이 신의주 출신 청년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 대표로 뛰었고, 그의 이름은 일본식으로 '송키테이'로 기록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선인들의 기쁨에는 설움과 울분이 뒤범벅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설움과 울분이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터져 나왔다.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쾌거를 보도하며 그의 사진에서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웠다가 총독부로부터 무기 정간 처분을 받은 것이다.독일이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나치의 힘을 전세계에 뽐내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 개최한 1936년의 제11회 올림픽에 일본은 217명의 선수단을 보냈다. 이 가운데 조선 출신 선수는 마라톤 2명, 농구 3명, 축구 1명, 권투 1명 해서 7명이었다. 손기정과 함께 일본 마라톤 대표 세 명 가운데 하나였던 남승룡은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전남 순천 출신의 남승룡은 손기정의 양정고보 한 해 선배다. 그는 마라톤 일본 대표 선발전에서 손기정을 제치고 우승한 바 있다. 비록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으로 그의 3위 입상은 빛이 다소 바랬지만, 남승룡은 손기정과 함께 조선 민족의 마라톤 역량을 전세계에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시동을 건 한국 마라톤은 해방 뒤인 1947년 제51회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 우승하고 다시 세 해 뒤인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함기용·송길윤·최윤칠이 나란히 1·2·3위를 차지하는 등 기염을 토해냈지만, 올림픽에서는 운이 닿지 않았다. 한국인 마라톤 선수로서 손기정 이후 처음 올림픽을 제패한 사람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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