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200만명이 넘는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上海)의 8월은 뜨거웠다. 거리를 돌아 다니기 힘들만큼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도시 곳곳에서는 제2회 상하이 국제 예술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11월까지 무용, 연극, 클래식, 영화, 대중음악 등을 다양하게 펼치는 이 축제는 1930년대 국제 도시였던 상하이의 옛 영광을 현재에 되살리는 작업의 하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이라고 말한 푸동 지구의 최첨단 빌딩이 국제화를 향한 중국의 경제적 도약을 말해준다면 예술축제는 상하이를 아시아 예술의 중심으로 세우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3일 저녁 상하이 중앙극장에서는 축제 전야제 격인 음악회가 열렸다. 상하이 중앙극장은 다국적 기업의 중국지사가 다수 입주해 있는 상하이상성(上海商城) 안에 있으며 유명한 재즈 보컬 로라 피지도 지난해 여기서 연주회를 가지는 등 세계 유수의 공연이 열리는 다목적 극장이다.
여기서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명 지휘자인 필립 앙트르몽이 지휘하는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피아니스트 김미경(41·이탈리아 레이크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 부원장)과 중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쉬충이 각각 로베르트 푹스의 피아노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특히 로베르트 푹스의 피아노 협주곡은 중국 초연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낭만파 스타일에 충실한 이 곡은 3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2악장의 서정적 부분이 특히 뛰어나다. 연주를 감상한 바이올리니스트 장레(미국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콘서트 마스터)는 "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상시킨다"고 관심을 보였다. 관객인 첸 후에(음악교사)는 "한중 양국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를 들었다"며 "푹스의 곡은 처음이지만 어렵진 않았다"고 말했다. 지휘자인 앙트르몽도 김 교수의 연주에 대해 "뛰어나고 성실한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이날 연주는 KTV와 상하이 TV 스테이션 등 현지 방송이 생중계했다.
다만 중국 관객은 아직 클래식 음악회의 매너에 익숙하지 않아 악장 중간에 입장하고 연주 중에 사진과 핸드폰을 사용하는 등 연주 방해가 자주 눈에 띄었다. 피아니스트 쉬충은 연주 도중 손짓으로 핸드폰을 받는 관객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관객의 반응은 솔직해서 김 교수의 연주가 끝났을 때는 2층에서 '브라보'가 쏟아졌다.
푹스(1847∼1927)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작곡가로 시벨리우스와 말러의 스승. 이 협주곡은 그 동안 빈의 한 도서관에 묻혀 있다가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음악가 매니저로 활동하는 쉔부른 뮤직 컨설팅의 권순덕(39)씨가 지인을 통해 4년 전 재발굴했다. 김 교수는 여러 작곡가들과 함께 1년 동안 관현악 반주 부분 등을 보완해 세계 여러 곳에 이 곡을 알렸다. 4월에 핀란드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내년에는 헝가리,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이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교수는 부원장을 맡고 있는 레이크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는 정규과정을 졸업한 피아니스트들이 추가 교육을 받는 곳으로 세계적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원장으로 있다. 백혜선, 박종화씨도 이 곳을 나왔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으며 부조니 콩쿠르 등 세계 유수 콩쿠르 심사위원을 지냈다.
/상하이=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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