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동생, 동료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산악인 7명이 고인을 앗아간 인도 북부 탈레이사가르 봉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렸습니다. 11일 출발을 앞두고 대원 중 한 명인 모상현씨가 5년전 같은 코스에서 도전하다 숨졌던 고 신상만씨를 추억하며 출정의 심정을 편지로 보내왔습니다. / 편집자주
늘상 내리는 비일 뿐인데, 이런 날 내리는 빗방울은 가슴에 떨어집니다. 불어난 계곡을 건너고 젖은 풀잎에 바지춤이 다 젖어갈 때 즈음, 상만이 형의 묘에 닿았습니다.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대로 초라한 제수를 내놓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형,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일까?
7년전 형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8,125㎙ 낭가파르밧을 오르기 위해 우린 설악산에 민박집을 얻었고 난방도 안되는 방에서 겨울을 보내며 눈만 뜨면 산을 올랐죠. 그리고 그해 여름, 낭가파르밧의 정상에서 우린 서로의 언 발을 겨드랑이에 넣고 녹이며 얼어붙어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죠.
형 생각나? 그곳에서 내려오며 얘기했잖아, 형은 그때까지 혼자 살고 있던 설악산에 집을 장만해 형수와 아들을 데려오기로 했고, 난 대학을 가겠다고 했었지. 그해 겨울 대입에 실패한 내게 형은 저항령이 보이는 집을 얻어 가족을 데려왔다는 엽서를 내게 보냈죠.
그리고 5년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기억합니다. 6,904㎙ 탈레이사가르 북벽에 하나의 선을 긋고는 정상 직전에서 형이 사라진 그날, 난 도서관 복도에서 신문을 보다가 알았죠.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이 정확히 적혀 있었죠. 사망했다고. 그때였을거야 아마. 꼭 그 산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냥 운명처럼 주어진 일인 것 같았죠, 나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만 들었죠.
그 이후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나도 대학에 진학했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2위봉 K2를 연속으로 오르고, 시샤팡마 등반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항상 머리 속에 탈레이사가르가 떠나지 않았죠. 어떤 날은 미치도록 그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고, 또 어떤 날은 그곳에 가기가 두려워 떨기도 했죠.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의 마음에도 이제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그 산에 가냐고. 난 대답합니다. 아직 어떤 한국인도 그 벽을 오르지 못했고 세계적으로도 그 길은 충분히 등반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이 또 묻습니다. 죽은 자의 아내, 친형, 후배들이 가는 이유는 뭐냐고, 다시 답합니다. 아내, 형, 후배들은 가면 안되냐고.
탈레이사가르를 가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가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준비하는 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의 대원이 남았습니다. 아내던, 형이던 등반능력이 없다면 결코 같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대원들의 목숨도 모두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등반능력, 그 산의 등반성에는 관심이 없고 유족, 죽음의 산, 이런 것들만 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섭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 말없이 우리를 도와주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할 뿐이죠.
어느새 비가 그쳤나 봅니다. 잔 바람에 나뭇가지에서 빗방울이 떨어질 뿐이네요. 검은 비석이긴 하지만 형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젠 돌아가렵니다. 그리고 떠나렵니다. 성공하고 돌아올 수 있겠죠? 어쩜 형을 빨리 만나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운명일 뿐이겠지요. 나뭇가지의 빗방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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