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장효조, 선동열, 박노준, 박찬호, 조성민, 이승엽…. 봉황대기는 32년동안 숱한 별들을 배출한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명암 엇갈렸던 박찬호 현역선수 중 봉황대기가 낳은 최고의 스타는 코리안특급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 공주고 시절 동기생 손혁(두산)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박찬호는 3학년때인 1991년 제21회 봉황대기 2회전에서 광주일고에 단 2안타만을 내주며 완봉승을 거뒀다. 그때 선발 맞대결 투수는 다름아닌 기아의 강타자 박재홍.
박찬호는 봉황대기와의 악연도 동시에 갖고 있다. 1학년이던 89년 휘문고와의 16강전에서 초고교급 방망이를 휘두르던 박정혁(교통사고로 작고)에게 3연타석 홈런을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다. 박찬호에게 톡톡히 망신을 준 박정혁은 다음날 광주진흥고와의 첫타석서도 홈런을 기록, 고교야구 유일한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까지 갔다가 포기한 조성민(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신일고 3학년이던 91년 모교에 봉황대기 첫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조성민은 홈런왕에까지 오르며 타격에서도 맹활약했다. 93년 경북고 준우승 당시 삼성의 이승엽이 선발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고, 91년 배명고 우승때 두산 김동주가 최우수투수상에 오르며 단일대회 최다홈런(18개)을 기록한 것도 흥미롭다.
김재박 '구장은 인산인해' 프로구단 현대 김재박 감독은 2학년이던 71년 봉황대기 원년대회에 대광고 2루수로 출전,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인연을 맺었고 SK 조범현 감독은 77년 충암고 우승당시 MVP에 올랐다. 김 감독은 "봉황기 첫 대회 결승에서는 남우식 천보성 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버틴 경북고에 0―1로 아깝게 졌다"며 "모든 고교팀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야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당시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회고했다. 김 감독은 "그때는 고교팀도 나무 배트를 사용해 알루미늄을 쓰는 요즘 선수들 보다 타격의 정확성과 정교함이 뛰어났다"고 덧붙였다.
73년엔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화제를 불러모았다. 장효조는 이듬해에도 타율 4할1푼2리, 도루8개의 호타준족으로 2연속 우승의 주역이 됐다.
선동열은 80년 경기고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같은 대회서 이종두(대구상고)는 고교야구 첫 사이클링 히트를 선보였다. 81년엔 박노준 김건우(이상 선린상고)와 문병권 성준(이상 경북고) 등 고교 스타들이 명승부를 펼쳤고 조계현(군산상고)은 대구고와의 8강전서 무려 18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85년 박동희(부산고)는 5게임에서 10안타만 내주며 '방어율0'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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