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는 보는 사람이 가치를 결정한다. 때문에 한 순간에 느끼는 '객관적 직시'에 만족을 주어야 한다."화가 강형구(49)씨의 이런 말대로라면 그의 캐리커처는 성공이다. 그가 제작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캐리커처를 보는 순간 감상자들은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움직여온 권력자들의 내면이 너무나 익살스럽게 드러나 있다. 14일부터 9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강형구의 캐리커처로 해석된 얼굴' 전 출품작들이다.
좌절과 분노, 뚝심과 희망이 캐리커처로 잡힌 이들의 얼굴에서 보인다. 노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광대뼈 위로 가늘게 뜬 눈, 보일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캐리커처는 한 마디로 어쩔 수 없는 분노 그 자체로 읽힌다. 두 눈을 내리감고 이를 악문듯 굳게 다문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있는 표정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되씹고 있는 듯하다. 대조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눈가에 주름이 접힌 채 이빨을 드러내고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장 과장된 표정으로 표현됐다. 원시인의 화석을 연상시키는 듯한 두상 구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다문 채 아래턱이 앞으로 쑥 나온 형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늘게 뜬 눈에 두툼한 입술, 처진 볼살이 정치 인생에 대한 회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선을 약간 위로 향한 채 이마의 주름 위로 머리칼이 곤두선 모습으로 아직 뚝심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작품은 지점토를 이용한 입체 캐리커처. 작가 강씨는 커피를 염료로 써서 채색하고 등신대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부를 과감히 생략하는 기법으로 대상 인물의 특징을 잡아냈다. 과장 자체를 생명으로 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캐리커처만큼 솔직하게 인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
강씨는 "사전적으로 캐리커처는 '어떠한 사건이나 인간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풍자한 그림'이라고 정의하지만 나는 반드시 풍자나 해학만이 캐리커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대상 인물에 따라 심각, 권위, 엄숙 등등의 무거움도 당연히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해 대규모 자화상 전으로 화제가 되는 등 극사실주의 인물화로 시대와 인간을 탐구해온 '얼굴의 화가'로 불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지점토 캐리커처 50점과 평면 캐리커처 400여 점을 출품한다. 간디부터 소피아 로렌, 후세인부터 이천수까지 국내외 정치인, 종교지도자, 연예인, 스포츠 스타, 경제인, 작가 등이 망라됐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