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신데렐라꽤 오래된 영화로 세계적 인기를 끈 '귀여운 여인'이 있었다. 한 매력적인 사업가와 거리의 여자 사이의 우연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인 에드워드(리차드 기어)는 사업차 들른 LA 밤거리에서 우연히 창녀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을 만나 1주일을 함께 보내기로 계약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진정한 애정 관계로 발전한다. 하루에 수백 달러, 그러니까 며칠에 수천 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 때문에 시작된 관계였지만 비비안은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창녀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에드워드 역시 비비안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비비안은 극히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과 돈을 동시에 얻는 행운의 여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그곳을 지나치던 에드워드와 만난 우연한 사건이 그녀의 운명을 바꾼 생애 최대의 행운이 될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운명의 여신은 아무런 기대도 계획도 없이 살아가던 비비안의 밑바닥 인생을 우연한 만남을 통해 한순간에 꿈같은 인생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보통 여성들이 틈틈이 상상의 소재로 삼는 내용을 극화한 것이다. 이런 소재의 소설과 이야기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세계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콩쥐팥쥐' 가 있다. '신데렐라'는 가난하고 천대 받던 착한 소녀 신데렐라가 모든 처녀들이 선망하는 왕자의 사랑을 얻고 그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로, 신데렐라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수많은 처녀들이 염원하는 이상적 사랑과 결혼의 모델이 되었다. 사랑과 부귀를 가지고 찾아올 백마 탄 기사나 왕자에 대한 간절한 동경, 사랑과 부귀가 결합된 이상적 결혼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유형의 사랑과 결혼은 변형된 형태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아주 가난한 여성이 우연히 부유한 가문의 청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는 경우, 그 반대로 아주 가난한 청년이 부유한 가문의 처녀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대개 한쪽 가문의 강력한 반대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많은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결혼에 골인할 경우 한 배우자의 물질적 조건은 갑작스럽게 향상되며 앞으로의 인생 전망 역시 완전히 달라진다. 이처럼 사랑과 결혼은 전혀 예기치 못한 부를 가져 오는 행운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과 부의 결합이 주는 감동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결혼을 가능케 하고, 결혼은 가난했던 한 사람에게 뜻하지 않았던 부를 누릴 기회를 주는 예는 우리에게 사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사랑에 부귀까지 덤으로 딸려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과 부의 위대한 축복이 결합할 때의 강력한 시너지 효과는 그 이야기를 보거나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물론 우연히 시작된 사랑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사랑은 때로 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때의 사랑은 위장된 정략에 불과하다. 정략으로서의 사랑은 사랑의 순수성을 위장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어렵다. 정략으로서의 사랑은 많은 비극영화와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부와 출세에 대한 야심과 거짓된 사랑의 결합은 종종 비극적 종말과 파멸의 씨앗을 배태한다. 물론 거짓된 사랑이 반드시 거짓된 사랑으로 끝나리란 법은 없다.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라 해도 얼마든지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고, 따라서 진정한 사랑과 부귀가 다시 일치하는 예기치 못한 반전도 가능하다. 그러나 거짓 사랑은 대개 부귀는커녕 환멸과 파괴를 가져올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랑이 우연성과 진실성을 상실하고 정략으로 이용될 경우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실한 사랑의 위대함과 거짓된 사랑의 추악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몇 년 전 '청춘의 덫'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돈과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4명의 청춘남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진실한 사랑을 배반하고 거짓된 사랑으로 부귀를 누리려는 한 청년의 파국적 종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진실한 사랑을 배반할 때 사랑도 부귀도 행복도 잃게 된다는 것, 또 진실한 사랑이 요구하는 희생과 인내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결국 사랑과 부귀를 동시에 얻게 된다는 점을 대비해 보여준다. 그러나 때로 진실과 허위의 구별이 극히 모호하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이 반드시 성공을, 거짓 사랑이 반드시 파멸을 가져온다고 믿기란 쉽지 않다.
부를 위해 사랑을 포기?
오늘날 사랑과 결혼은 부귀를 얻는 한 가지 방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젊은 여성이 나이든 홀아비의 아내가 된다든지, 반대로 젊은 남성이 나이든 과부의 남편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농담도 흔히 듣게 되는데 이런 속언은 사랑과 결혼을 소위 팔자를 고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 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확실히 지속적 빈곤은 행복한 가정생활도, 순수한 사랑도 변질시키는 파괴적 힘을 갖고 있다. 사랑과 부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별개의 것으로 추구하겠다는 현대 청춘남녀의 세태는 바로 부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현실주의적 자각에서 비롯한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는 생각 이면에는 사랑과 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면, 물질적 부를 위해 사랑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숙명으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낭만적 사랑의 관점이었다. 흔히 낭만적 사랑은 신분이나 계급이 다른 두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며, 많은 장애와 시련을 극복한 후 마침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이 때 우연히 시작된 사랑은 한 쪽의 물질적 형편과 사회적 지위에 엄청난 변화를 부르는 행운을 포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낭만적 사랑은 비록 개인 차원이긴 하지만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애인의 지위와 형편을 한 순간에 개선시킨다는 점에서 부분적 정의의 실현을 수반한다.
반면 보다 현실주의적 관점은 사랑을 결혼이라는 부담을 안지 않고 서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사회적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폐지되고 남녀의 정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살게 된 탓이지만, 대부분의 청춘남녀는 사랑과 결혼을 더 이상 숙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과 결혼을 별개의 두 사건으로 인정하고 어느 정도는 자신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결혼도 훨씬 더 현실주의적으로 선택된다. 다시 말해 사랑의 연장선상에서만 이해하지 않고, 생계와 성(性)과 다른 편의를 위한 장기적 동맹·계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 풍조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결혼과 부귀영화가 결합되는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사건은 예나 지금이나 청춘남녀들의 영원한 이상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이상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무너뜨림으로써 미약하나마 정의의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뜻하지 않은 행운을 수반하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는 앞으로도 수많은 청춘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김 비 환/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