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이후의 대한민국과 1920년대의 독일 곧 바이마르 공화국을 나란히 놓는 것은 무리다. 역사적 맥락, 국내의 계급 구성과 이념적 스펙트럼, 정부 형태, 국제 정세 따위가 판이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정부의 수립과 함께 크게 확대된 자유의 공간이 구체제로의 복귀를 꾀하는 극우 세력에 의해 악용되고 있고, 좌파 세력 역시 공세의 화살을 반동적 정파보다는 집권 세력에게 겨누며 정치 과정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공화국은 닮았다. 히틀러의 합법적 집권으로 막을 내린 바이마르 공화국의 그림자가 눈앞에 불길하게 어른거리는 것도 괜한 일은 아니다.이런 불안감으로 둘을 찬찬히 비교해보면, 닮은 점이 속속 더 드러난다. 우선 주류 민주주의 세력이 공화국의 이데올로기 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대적 좌표가 비슷하다.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의 제1당이었던 독일사민당은 진보 정당이고, 한국의 집권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사민당이 당대 독일에서 그랬듯, 민주당도 지금 한국의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한 중앙에서 다소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사민당처럼 민주당 역시 단독으로 의회를 장악하지 못해 우익 정파와 내키지 않는 악수를 해왔다.
더 닮은 점은 두 공화국에서 극우 세력이 대중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코드가 복고와 증오라는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극우파는 제2제국과 빌헬름1세·2세를 거듭 기리는 한편 유대인과 사회주의자, 프랑스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다. 한국의 극우 세력도 군사 파쇼 정권의 원조 박정희의 성인전(聖人傳)을 지겹게 써대며 북한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민당과 급진적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불신이 깊디깊었듯, 한국에서도 민주당과 좌파 정당은 서로를 백안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만을 놓고 보면 한국의 사정이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더 나쁘다.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크든 정부와 민주당 사이에는 긴장이 일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리버럴한 습속이나 자율적 민주주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중과 관료 조직은 나날이 도를 더해가는 수구 언론의 악의적 공세에 휘말려 자유와 자율의 고귀함을 잊고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등장을 희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상 최악의 체제에 자리를 물려준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새로운 파쇼 체제에 자리를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제 더 이상 기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때 구체제로의 복귀를 거부했던 세력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좀더 섬세하고 사려 깊게 다듬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것은 특히 민주당 안의 이른바 반노 진영에 해당하는 얘기다.
정부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민당과 사법부는 어리석게도 극우파의 쿠데타 시도보다 극좌파의 혁명 운동에 더 적의를 드러냄으로써 사회 전체의 우경화를 도왔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볼셰비키 소련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존재했으므로, 그런 어리석은 태도에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급진적 사회주의가 역사의 유물이 돼버린 지금, 노무현 정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부를 무너뜨리라고 부추기는 일부 극우 세력의 내란 선동에는 눈을 감은 채, 목소리만 있을 뿐 아무런 힘이 없는 한 움큼의 좌익 몽상가들을 '법대로 엄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수구·복고 세력의 둥지라는 점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에른을 빼닮은 영남의 보수적 유권자들에게 영합하느라 자신의 가장 공고한 지지자들을 떨구어내며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을 방조하는 어리석음까지 더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옹호자들에게 지금 긴급한 문제는 보수주의로의 퇴각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전국 정당' 건설이 아니다. 정녕 긴급한 문제는 민주공화국의 수호 그 자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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