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가 쏟아지는 6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570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8·15 광복절을 앞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본 항의방문 출정식을 겸한 이날 집회가 시작되자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외치던 강일출(75·사진)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져 갔다.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과 함께 이날 오후 3박4일간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감정이 복받쳤던 것이다. "해를 끼친 사람들은 잊었을지 몰라도 아픔이 있는 우리는 모든 걸 생생히 기억해. 일본 정부가 빨리 뉘우치고 사죄를 해야 천추의 한이 풀리겠지." 이번 일본 방문에서 강 할머니 등은 대만 출신 위안부 피해자 2명과 함께 일본 참의원 의장, 외무부 차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할 계획이다.경북 상주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강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열 여섯 꽃다운 나이였던 1943년. "단둥에서 하얼빈까지 만주 일대 곳곳을 끌려 다니며 끔찍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는 할머니는 해방 직후에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저기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연명하다 중국 국적을 취득해 2000년 3월 영구귀국이 허용될 때까지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50년 이상을 외롭게 살아야만 했다. 3남9녀 중 막내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강 할머니였지만,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물론, 형제 자매 모두 유명을 달리한 지 오래였다. 때문에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소송이 진행됐던 2000년 12월에도 일본 도쿄(東京) 법정에 나가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한 적이 있는 강 할머니는 "하늘과 땅이 모두 아는 사실을 일본 정부만 모르는 척 한다"며 "그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똑똑히 알려주고 돌아오겠다"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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