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지막한 바위, 크고 잘 생긴 노송 한그루, 멀리 갈대 숲 사이 젓대 부는 사람이 탄 작은 배 한 척. 아주 적막하고 시원해 보이는 김응환의 '강안청적도― 강가에서 대금연주를 듣다' 속의 강 풍경을 한참 들여다보며 이런 여행을 꿈꾸는 중에, 엉뚱하게도 그림 속 동자와 선비가 나누는 얘기가 들리는 듯해 혼자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맨 먼저 말문을 여는 것은 동자다. 그림 속 선비는 강변 소나무 그늘 아래에 아주 편히 자리를 잡고 강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젓대(대금) 소리에 마음이 빼앗긴 지 오래다. 그런데 보퉁이를 막대에 메고 나귀 고삐를 쥔 아이는 선비의 여행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선 채로 있다가 조심스럽게 "선비님,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이제 웬만큼 들으셨으면 다시 길을 뜨시는 것이 좋으실 듯합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비는 동자의 급한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강가에 앉아 젓대 소리를 듣노라니 오랫동안 품었던 진세일념(塵世一念)이 얼음 녹듯 하는구나"라며 한가한 대답을 한다. 동자는 큰 마음 먹고 다시 한번 "그러시다가 해 떨어질까 염려됩니다"고 재촉을 하는데 선비는 "가뜩이나 저는 나귀 채 주어 모지마라/ 서산에 해 지다 달 아니 돋아 오랴/가다가 주사(酒肆·주막)에 들면 갈 동 말 동하여라"(작자미상 시조) 며 동자의 말문을 막는다. 가다가 해지면 달 떠 올 텐데 뭣이 걱정이며, 또 주막에 들어 맘에 들면 자고 갈수도 있으니 채근하지 말란 말이다.
선비가 이렇게 진종일 앉아 듣고 싶은 강 저편 젓대 소리는 무엇이며, 18세기 화가 김응환이 아름다운 강 풍경에 담아 영원히 들려주고 싶었던 강호(江湖)의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저 강 건너 뱃전에 앉은 사람은 '바르고 맑고 탈속한' 뜻이 담긴 '영산회상', '여민락', '자진한잎'을 연주하고 있을 테고, 이쪽에 앉은 선비는 그 젓대 소리를 들으며 '세상 공명(功名)'을 버리고 '무한청복(無限淸福)'을 택한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다. 이 그림을 보면 오래 품어 온 진세일념(塵世一念)을 씻어주는 젓대 소리를 여행 길에 챙겨갈 음악 목록에 넣지 않을 수 없겠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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