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5개월을 맞은 강금실 법무장관은 의욕에 넘쳐있었다. 첫 여성 법무장관인데다 사법고시 선배들이 즐비한 법무·검찰조직의 장을 맡은 데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장관은 취임직후 불거진 인사파동과 최근 잇단 정치인 연루 비리사건 등을 잘 헤쳐나온 데 대한 자신감도 은연중 내비쳤다. 6일 오전 과천 법무장관 접견실에서 화사한 핑크빛 옷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강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과도기"라고 전제하고 "법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는 관행이 정착된다면 '검찰의 파쇼화'에 대한 우려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나 수사와 관련해 단 1통의 청탁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한 강장관은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일각의 내년 총선 차출설을 부인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에게 공개한 집무실에서 지난 대선때 노무현 후보의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던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 소형 오디오에서 흘러나오자 강장관은 "얼마나 좋은 노래입니까"라며 소녀처럼 웃었다.대담=윤승용 사회1부장 syyoon@hk.co.kr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을 놓고 말들이 많다. 검찰조사 직후 벌어진 일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변호사가 참관했고 조사분위기도 좋았던 것으로 들었다. 명랑한 표정이었다고 하던데…"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장면 몰래카메라 사건과 관련, SBS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나선 데 대해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몰래 비디오테이프를 촬영한 것 자체가 범죄행위 아닌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만큼 적법한 영장청구라고 생각한다. 방송사의 특수성 때문에 아직 집행을 안하고 있는데 다른데 같으면 벌써 강제집행했을 것이다. 몰카 촬영은 그 내용을 떠나서 매우 심각하고 끔찍한 일이다. 언론사는 공익의 목적에서 보도했겠지만 술자리를 찍는 행위가 공익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굿모닝시티 수사를 통해 검찰이 180도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검찰의 변모에 찬사를 보내는 여론이 있는가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서 '검찰 파쇼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과도기중에서도 1단계라고 봐야 한다. 굿모닝시티 수사는 그 시험대다. 검찰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이 사건만큼은 정말 열심히, 소신대로 수사하고 있다. 지금은 신뢰회복 단계로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집단인지 시험 받고 있다. 검찰권 통제에 대한 고민은 수사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뿌리내린 후에야 가능하다고 본다. 수사권이 정치권과 결탁해 정적 제거용 표적수사로 남용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법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는 관행이 정착된다면 파쇼검찰의 우려는 없다고 본다."
―취임 후 검찰인사가 몇 차례 있었다. 청탁은 없었나.
"전화 한 통 받은 일이 없다."
―수사에 대해서도 그런가.
"자유롭고 편안한 여건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검찰을 손에서 놓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 대통령의 소신이 그런 만큼 정권이 위기에 직면한다 해도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장관 선에서 적절히 통제해 주길 바라는 의중을 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권 일각에서는 평검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먼저 컨트롤(통제)에 대한 개념정의부터 해야 한다. 검찰에 대한 컨트롤은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인사권을 통해 수사권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 프로세스 안에서의 권력 분산과 견제, 균형의 원칙에 기초한 것으로 이러한 의미의 컨트롤은 이뤄지고 있다. 흔히 '성역 없는 수사'란 표현을 하는데 수사는 생명체와 같다고 한다. 지금은 부딪히는 대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나의 기본입장은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철저히 수사하라는 것이다."
―검찰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 같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재도 많은 개혁과제를 검토, 마련 중이며 조속한 시일 내에 검찰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검찰인사위원회 규정을 개정해 외부위원을 확대하고 내부위원에 평검사를 참여 시키는 등 인사제도를 획기적으로 쇄신하여 검찰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국보법 개폐, 보호감호제도 폐지 등 인권현안에 대해 기대보다 소극적인 것 아닌가.
"남북 대치상황에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국보법 개폐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고 보는데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호감호 제도 자체를 폐지할 것인지, 제도는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할 것인지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향후 현지방문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방안을 마련할 예정인데 그 전이라도 개선 가능한 부분은 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
―검사동일체 원칙, 검찰에 대한 외부 감찰제도 도입 등 개혁 방안에 대해 검찰과 장관 생각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조직 구성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스럽다. 평검사들과의 토론 등을 통해 느끼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수사독립성을 확보한 '바른 검찰'을 만들겠다는 점에서 나와 같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인 뇌물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짜맞추기식 표적수사의 폐해와 함께 잘못된 수사에 대한 내부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
"특수부 등 인지부서의 경우 수사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억지수사 때문에 무죄가 날 수도 있겠지만 증거가 주로 진술에 의존하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여당이 검찰총장의 국회출석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수사에 대한 최종책임자는 법무장관이므로 총장이 국회에 출석할 이유가 원칙적으로 없다. 또 검찰총장은 예산권을 가지지 않는 등 일반 중앙행정기관장과 성격이 다르다."
-경찰의 수사권독립 요구에 대한 견해는?
"적절한 시기에 대검에서 발표할 것이다. 적절하고 긍정적인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똑같다는 시각에서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검찰은 준 사법기관으로서 수사에 대한 지휘감독을 할 책무가 있다."
―8.15사면 대상자는 확정됐나.
"이번에는 일반사범을 중심으로 하되 비리연루 부패사범은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선거사범의 경우에도 금품비리 관련 사범은 제외토록 했다. 최근 사면처리지침을 만든 데 이어 현행 사면제도 개선을 위해 외부에 연구용역을 줬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개정법안을 만들 예정이다. 노 대통령도 사면권의 남용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검토하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사면이란 것이 대통령이 기분한번 내자고 하는 것 아닌가.(웃음) 그렇지만 너무 잦으니까 문제다."
―최근 검찰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검사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너무 자기 코드에 맞는 검사들만 좋아한다는 농담 섞인 불만도 있다.
"지난달 평검사들과 합숙토론을 가졌는데 아주 좋았다. 가을에는 검사장들과도 한번 할 생각이다."(웃음)
―내년 총선에 여권 후보로 차출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만약 제의가 온다면.
"안 한다. 마음의 결단이 내려져야 하는 것이지 누가 오란다고 갈 수는 없다. 그쪽으로 마음이 가지 않고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 계획한 일을 마무리 짓는 데만도 5년은 걸릴 것 같다. 노 대통령도 법무·검찰의 개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5년 동안 계속 장관 한다는 말씀인가.
"쫓아내면 어떻게 하나."(웃음)
/정리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 康장관은
강금실 법무장관은 참여정부 초대 각료 중 가장 성공적으로 조직에 적응한 케이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관훈토론회에서 "사내(장관)들 다 합친 것보다 낫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지난 2월 강 장관이 취임했을 당시 그의 안착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시 18회가 최연소 검사장인 상황에서 사시23회 장관임명은 서열파괴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그는 최초 여성법무장관이기도 했다. 3월 검찰인사 파동을 거치며 검사들의 집단 항명에 직면하는 등 한때 우려가 현실화하는 듯 했으나 그는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성공요인으로 '유연한 사고능력'을 첫번째로 꼽는다. 민변 출신 변호사, 운동권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등 경력에서 느껴지는 진보적 색채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코드'를 고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총련 학생들의 5·18 시위 땐 비판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고 철도노조 불법파업 당시엔 공권력 투입 필요성을 주창했다. 검사들을 '순결한 눈사람'으로 표현한 연서(戀書)형식의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리는 등 검찰조직에 대한 '열린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때문에 '법무·검찰 개혁'의 엄중한 시대적 사명을 뒤로 하고 기존 질서에 지나치게 동화되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준법서약제 폐지, 한총련 가입자 수배해제, 검찰 인사위원회 개편 등은 주목할 만한 개혁성과물이라는 평가다. 판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 최초 여성 민변 부회장을 역임했다.
/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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