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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달러 시대로 - 선진경제 浮沈에서 배운다]<13·끝> 일본/경제모델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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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달러 시대로 - 선진경제 浮沈에서 배운다]<13·끝> 일본/경제모델의 진로

입력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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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실적이 안 좋아졌다고 종업원을 해고한다고요?"키타가와 테츠오(北川哲夫) 도요타 해외홍보부장은 '인원감축도 때로는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했다. 그는 "우리가 만일 해고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도산이라는 선택밖에 남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며 "이런 정신이 바로 도요타의 경쟁력"이라고 강변했다.

지난 50여년간 단 한번의 해고도, 노사분규도 없었던 도요타는 종신고용·연공서열·노사화합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기업모델의 전형이다. 임금 동결은 가능해도 해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고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는 물러나야 한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도 노조와 협의해서 결정하고, 임금협상은 노사가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영미식 관점에서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기업, 도요타는 지난해 일본기업 사상 최초로 1조엔(10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자동차 업종이면서도 닛산의 경영모델은 도요타와는 정반대이다. 1999년 르노에 인수된 이후 종업원의 14%인 2만여명이 해고됐고, 5개 공장이 폐쇄됐다. 비효율적인 하청업체들과의 관계도 정리됐다. 이 결과 닛산은 연속적자에서 탈피, 자동차업계 2위인 혼다를 추월했다. 카를로스 곤 사장은 '냉혹하게 잘라낸다'는 의미에서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일본모델이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식 구조조정으로 도산직전까지 몰린 회사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은 분명 변하고 있다. 종신고용을 고수하고 있는 도요타도 연공서열에 관해서는 '결과 중시형'의 미국식과는 다르지만 성과주의를 도입, 개인의 능력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최고이익을 경신하고 있는 캐논도 종신고용의 토대 위에 실력주의 보상시스템을 접목하고 있다. 동종업계간 통폐합도 늘고 있고, 비효율적인 그룹내 내부거래도 탈피하고 있다.

그 변화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기자가 취재한 10명의 일본 각계 경제전문가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닛산은 도산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미국식 구조조정이 필요했을 뿐, 닛산식 파격은 일본에 맞지 않습니다." 가내모리 히사오(金森久雄)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일본경제연구센터 고문은 "일본에는 도요타식 모델이 적합하다"고 못박았다.

우시지마 준이치로(牛嶋俊一郞) 일본 내각부 경제사회총합연구소 차장도 "일본은 영미식도, 유럽식도 아닌 일본식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영미식은 불황이 닥치면 고용과 임금을 모두 줄이고, 독일식은 아무것도 줄이지 않지만 일본은 임금은 줄이되 고용은 유지하는 모델이다. 영미식과 유럽식의 중간모델인 셈이다.

일본이 고용유지·노사화합을 이토록 고수하는 것은 근로자들이 바로 기업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인식때문이다. 일본은행 경제통계국 세이사쿠 카메다(電田制作) 조사역은 "일본기업의 기술혁신은 10여년 이상 장기간 숙련된 종업원들의 손끝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종업원 개개인이 기업의 연구개발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욱이 일본 사회는 유럽처럼 실업자에 대한 사회보장 수준이 높지도, 미국처럼 전직(轉職)이 '미덕'인 사회도 아니기 때문에 해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일본의 10년 불황도 따지고 보면 금융의 탓이 컸다. 오너도 없고, 주주 중심적이지도 않은 일본 기업이 낙후된 금융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종업원 중심주의 전통때문이다.

일본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하는 영미식 모델에 비판적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연구소의 고바야시 케이치로(小林慶一郞) 박사는 "80년대를 끝으로 일본식 모델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했다. 스시(일본 초밥)가 세계적 요리가 된 것처럼, 일본 모델이 글로벌스탠더드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시장주의적 학파인 미국 시카고대 출신이다. "미국식 모델이 과연 합리적이기만 한지, 한국도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쿄=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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