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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자살예방, 사회가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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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자살예방, 사회가 나서자

입력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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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하지만,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것은 그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비중이나, 현대그룹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궤적을 같이 해온 정씨 일가의 계속된 불행은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고 그의 죽음에 우리 모두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0년대 이후 급증해 2001년에는 인구 10만명당 15.5명으로 사망원인 중 차지하는 비율이 8위나 된다. 특히 20대에서는 사고사에 이어 자살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심각한 일이다.

자살의 가장 중요한 심리상태는 '상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질병으로 잃게 된 건강,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퇴직으로 인한 일의 상실 등 모두 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상실한 대상과 애착이 강할수록 그 반응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최근 뇌에 관한 연구가 급진전하면서, 자살하려는 사람의 뇌 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 신경계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보고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세로토닌은 감정 사고 수면 식욕 성욕 등 거의 모든 인간 행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충동성 물질중독 등과도 밀접한 연관을 보이고 있다. 자살은 또한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소설가 헤밍웨이 집안은 4대에 걸쳐 5명이 자살을 했고, 이란성 쌍생아보다 일란성 쌍생아에서의 자살률이 5배 정도 높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깽은 자살을 3가지 형태로 나누었는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그리고 무통제적 자살이 그것이다. 이기적 자살이란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과 같이 개인이 사회와 관계를 잘 맺지 못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이타적 자살이란 일본의 가미가제처럼 개인이 사회와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무통제 자살이란 사회집단에 대한 개인의 융화나 적응이 일시에 갑자기 차단되거나 붕괴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갑작스러운 경제적 파산,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의 붕괴 등이 그 원인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자살 중에는 이런 무통제적 형태가 많다는 점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된다.

지금 한국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세대 갈등, 노사의 이념적 대립, 주류와 비주류의 급격한 교체,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 등으로 인하여 많은 국민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모든 사회적 현상이 사람들을 무통제적 자살로 내몰고 있다.

더욱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자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연일 자살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그것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조사에 의하면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많이 나올수록 실제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사회적 관심이 큰 인물의 경우 그 파장은 더 클 수 있다.

이제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즉 자살예방 프로그램과 같은 범국가적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과 그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카운셀링을 해주거나 실제적으로 도움을 줌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든다든지, 학생들의 자살이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학교보건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인간생명의 존귀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문제 해결 방법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미화되어서는 안된다. 자살로써 모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은 결국 남겨진 사람의 몫이 되므로.

권 준 수 서울대 교수·정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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