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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려되는 생명경시 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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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려되는 생명경시 풍조

입력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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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연일 계속되는 자살의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져, 생활고를 비관한 타살성 가족동반자살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자살률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회현상은 아니다.일본이나 홍콩도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한 빚이나 생활고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홍콩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6.5명으로 세계 최고이고, 일본도 5년 연속 연간 3만명대의 자살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자는 지난해 경우 하루 평균 36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도 많다.

범죄사회학적 이론에 의하면 자살률은 사회 여건이나 환경에 의해서 좌우된다. 물론 심리상태나 유전적 기질 등 개인적인 사정도 있지만, 한편으로 공동체의 위기적 상황의 반영이기도 하다.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준 대기업 회장의 투신자살이나 영국의 생화학무기전문가, 홍콩 영화배우 등의 자살에서 보듯이 자살원인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가정불화, 군대내 구타와 성추행, 성적 비관, 이성문제, 노조원 분신 등 동기가 다양하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택하는 것은, 삶이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안고서도 살아가야 할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만이 불행과 위기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향한 탈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살행위는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가족에 겨냥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다. 경기침체, 빈부격차 확대, 빈곤과 실업자, 신용불량자 등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된 계층의 증가가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밝혀진 이상, 자살을 개인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공동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한 자신의 생명처분이라며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예방하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절실하다. 특히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장기적인 사회경제정책이 필요하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다루는 온갖 컴퓨터게임들, 자살충동을 부채질하는 인터넷 자살사이트,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타인과의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등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이번 대기업 회장의 죽음에서 보듯이 경제문제만이 자살의 주요 원인은 아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의 부재가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자살을 의로운 죽음으로 미화하거나 어떤 목적으로든 악용하는 풍조, 곤궁하고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식의 죽음에 대한 가벼워진 인식과 같은 생명경시 풍조가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이다.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는 고유한 가치이다. 생명은 상하의 귀천 없이 평등하며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물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생명을 타인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생명권과 함께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자유주의·개인주의 생명관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자유의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자살권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몸을 던져 생존의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탈출하려 했던 자살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국가와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살예방과 자살률 감소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 태 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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