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현대그룹 가신중의 가신'으로 불리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장례 이틀째인 5일까지 빈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이 전 회장은 2년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도 현대증권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미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참석지 못했었다.현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북송금 특별검사 조사에서 정 회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이 전 회장이 죄책감 때문에 빈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과 "현재 입장이 어렵더라도 현대 총수 2대에 걸쳐 총애를 받았던 만큼 빈소에는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 전 명예회장 비서 출신인 이 전 회장은 1998년 정 회장을 도와 '소떼 방북'을 성사시키면서 정 회장이 형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을 제치고 대북사업의 후계자가 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바이 코리아'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이 전 회장은 유력한 후보였던 정몽준 의원이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개입했다고 폭로, 정 의원을 곤경에 빠뜨리며 현대가와 악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의 폭로는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정 의원이 정몽헌 회장에게 "이익치를 멀리하라"고 충고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정 의원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어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 전 회장과 현대가의 악연은 올해 대북송금 특검 수사에서 재현됐다. 이 전 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정몽헌 회장의 지시를 받고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으로부터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 어치를 건네 받아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며 모든 책임을 정 회장에게로 돌렸다. 정 회장 측근들은 "당시 정 회장은 이 전 회장의 배신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박지원씨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진술할 당사자는 정몽헌, 이익치, 김영완씨 등 3명 뿐인데 김씨가 귀국하지 않는 한 이 전 회장이 유일한 증언자"라고 밝혀 이 전 회장의 입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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