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의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 당직자들은 정몽헌 회장 자살의 책임을 한사코 DJ정권쪽으로 돌렸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야망이 발단"이라고 지적했고, 박주천 사무총장은 "DJ정권이 무리한 대북사업을 추진하느라 기업 돈을 무리하게 빼내 현대가 해체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전날 홍사덕 총무는 한술 더 떠 "남북의 위정자들이 유망한 한 기업인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경위를 밝혀야 한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면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비분강개했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 책임론은 대북 사업에 대한 한나라당의 평소 입장과 차이가 있다. "DJ정권과 현대가 유착해 특혜와 검은 돈을 주고받았다"며 현대에 투입됐다는 34조원의 공적 자금을 집요하게 문제 삼던 한나라당이었다.
말이 달라진 배경은 간단하다. 정 회장의 죽음을 어떻게 해서든 대여 공세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얄팍한 계산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를 보다 못한 한 소장 당직자가 "상중(喪中)에는 그런 얘기를 삼가자"고 일갈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특검이 정 회장을 죽였다"는 민주당 구주류 중진 인사나 신주류 소장 의원의 주장도 정략적 아전인수(我田引水)이기는 마찬가지다. 정균환 총무는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했어야 했다"고 '대통령 책임'까지 들먹였다.
여야의 이 같은 공방은 시시비비가 어찌 됐든 '정치가 정 회장의 죽음을 불렀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어서 공교롭다. 시중의 인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이 최소한 정 회장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만이라도 입을 닫고 자중해야 할 이유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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