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버린 여배우의 모습만큼 세월의 흐름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건 없다. '클래식'에서 매점 아줌마로 등장한 임예진을 보았을 때, '진짜진짜 미안해' 같은 청춘영화에서 순도 100% 청순가련형이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 조금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최근 시트콤에 공주병 아줌마로 등장하는 이보희(44)를 바라보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가장 잘 나가던 배우의 하나였고, 지금은 고인이 된 남자배우 임성민과 함께 당대의 대표적 남녀 '에로 아이콘'이었던 그녀. 지금 그녀를 추억한다는 건, 정윤희나 장미희를 떠올리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다.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무살에 MBC 탤런트가 된 그녀는 방송에 정을 못 붙이고 충무로로 뛰어들었다. 첫 영화는 청산리 전투를 그린 '일송정 푸른 솔은'이었고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이때부터 이장호 감독의 전속배우가 된다. 여기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녀에게 붙은 '에로 배우'라는 딱지는 꽤나 억울해 보인다. 단 두 편의 영화 '무릎과 무릎 사이'(1984)와 '어우동'(1985) 때문에, '과부춤'의 열연과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의 실험적 연기(1인3역)는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과거 '벗는 배우'의 대명사로 인식된 건, 아마도 관상학적 이유 때문인 듯하다. 당대 에로 영화의 트로이카를 든다면 '원조 애마' 안소영, '2대 애마' 오수비 그리고 이보희다(여기에 원미경이 추가될 수도 있겠다). 그네들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눈이 크고 얼굴 선이 가늘며, 가냘픈 목선은 쇄골을 타고 내려가 글래머러스한 가슴으로 이어진다. 결곡한 콧선은 뭔가 감춘 듯하며 하얀 얼굴은 창백하게까지 보인다. 그녀들의 표정이 가장 빛날 때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입가에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배어 문 채 고개를 뒤로 젖힐 때였다. '무릎과 무릎 사이'의 그 장면이 기억나는가? 혼선된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헉헉 소리에 탄력을 받은 그녀가 플루트로 자기 몸 구석구석을 애무하던 장면! '애마부인'에서 안소영이 슬로 모션으로 말 타던 장면과 더불어, '변강쇠'에서 이대근이 소변으로 폭포 만들던 장면과 함께, 80년대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압권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 시대는 그런 이미지의 여배우를 섹스 심볼로 삼았을까? 그 해답은 '무릎과 무릎 사이'에 있다. 심신을 추스르려고 간 시골에서 그녀는 마초들에게 강간 당하고 또 윤간 당한다. 결국 그녀들의 연약한 이미지는 남자들의 강간 충동을 부추기는 모티프였으며, 뽀얀 피부와 속살은 파괴 본능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아직 남한이 군화발 아래에 있던 80년대 파쇼의 시대. 그들의 문화 슬로건이었던 3S(섹스 스크린 스포츠) 정책. 그리고 정책의 충실한 수행자였던 충무로. 당시의 가장 큰 피해자를 여배우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베드신에서만큼은 남자배우 대신 꼭 자신이 직접 대역을 했다는 당시의 어떤 감독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에이, 몹쓸 사람!
/김형석·비디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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