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 회장은 아내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에게 남긴 유서에도 별다른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정 회장을 둘러싼 상황 등을 살펴보면 사면초가에 빠진 정 회장의 처지가 감지된다.정 회장은 선친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의 대북사업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은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불거진 뒤 '대북 퍼주기 사업'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북에 준 돈이 핵무기 개발에 이용됐다'는 극단적 비난까지 나오는 등 선친의 유업인 대북사업이 평가절하되자 정 회장은 심각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서에서 '명예회장이 원했던 대로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해달라'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달라'며 대북사업에 대한 간절한 애착을 나타낸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이어진 공판으로 심신이 지쳐있었던 점도 한 이유로 꼽힌다. 현대 관계자들은 "현대그룹이 공중분해 되다시피 한 마당에 특검수사까지 겹쳐 (정 회장이) 몹시 괴로워 했다"고 전했다. 이런 정 회장에게 특검수사가 끝나기 무섭게 또다른 검찰 수사가 다가왔다. 특검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현대 비자금 150억+?'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부터 3차례 극비리에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수사는 정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인 2일까지 이어졌는데 매번 오전 10시에 출두해 오후 10시까지 12시간씩 진행되는 등 간단치 않았다. 검찰측은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대담 형식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사를)했다"고 하지만 검찰의 직접조사를 받는 당사자로서는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 내용이 정 회장을 더욱 압박했을 수 있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150억원을 줬다고 진술한 정 회장 앞에 검찰이 현대 비자금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던져놓고 추궁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현대상선 등 주력 계열사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을 개연성이 매우 높아 정 회장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느낌을 받았을 법하다. 이와 관련, 김윤규 사장은 빈소를 찾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에게 "회장님이 다 막으려고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말했다. 무언가 메가톤급 비밀을 지닌 정 회장이 검찰수사로 압박을 받자 현대와 정치권의 허물을 감싸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를 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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