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굿모닝시티와 대선자금 파문이 한 고비를 넘기는가 싶더니 이젠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파문으로 또 다시 노무현 정부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참여정부는 여러 면에서 소수파 정부이기에, 출범 때부터 어려움이 예상됐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사정기관을 통한 국정장악이라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단절을 함으로써 반대세력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마저 잃어버렸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유일한 무기는 도덕성에 기초한 국민적 지지와 여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연이은 스캔들로 도덕성에 흠집이 가면서 참여정부가 휘청거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이들 스캔들과 관련해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굿모닝시티 사건이 터지자 정대철 민주당 대표 주변에서는 정 대표를 죽이고 정치권을 물갈이하기 위한 386의 음모라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386측에서는 음모론 자체가 음모라는 '음모의 음모론'으로 반격을 가했다. 양 실장의 경우도 참여정부에 도덕적 타격을 주기 위한 음모, 특정학교 출신이 제1부속실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 구주류의 음모 등 다양한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즉, 한 사건이 터지면 음모론이 제기되고 이에 음모론이 음모라는 '음모의 음모론'으로 반박하고 다시 음모의 음모론이 음모라는 '음모의 음모의 음모론'이 나타나는 '음모론의 무한경쟁'이 생겨나고 있다.
체계적으로 조사를 해보지 않았지만 한국정치에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 아닌가 싶다. 특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패배한 이인제 의원이 제기한 음모론 등 2002년 대선이 기폭제가 된 것 같다. 문제는 왜 최근 들어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느냐는 것이다. 과거보다 실제로 음모가 많아졌기 때문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실제 음모가 많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이 팽배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이는 언론의 자유가 커져서 과거 같으면 '유비통신'에 그쳤을 음모론을 언론들이 마구 보도하여 확대재생산시키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불신이 팽배하고 편 가르기와 증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인 것 같다. 편 가르기와 증오의 정치가 보편화하면서 어떤 사건이 터지면 이에 책임이 있고 피해를 보는 측이 결과에 승복하기보다는 배후에 다른 편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피해망상적 사고가 보편화하고 있다. 또 편가르기가 극심해지면서 잘못한 일이 있어도 다른 편의 음모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를 믿어주는 비이성적인 편가르기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이 가져다주는 심각한 폐해는 도덕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사안도 음모의 피해자로 그려져 잘못이 은폐된다는 점이다. 정대철 대표 측에서 제기한 음모론과 양길승 파문을 둘러싼 음모론도 그러하다. 음모의 실재여부와 상관없이 정 대표와 양 실장의 행각은 잘못된 것이다.
음모론은 우리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측근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는 못할 망정 언론이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은 노 대통령마저도 양길승 파문을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기 위한 수구언론의 음모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이를 바라보면서 불길하게도 김대중 정부 초기의 옷로비 사건이 떠오른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여론을 원망하다가 민심으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옷로비 사건인데, 양길승 파문은 여러 면에서 이를 닮아가고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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